대형사고 전 경미한 징후들
즉, 예견에 대해 외면과
강력한 구심점 없는
컨트롤타워 부재,
과거 발생한 문제점 망각…
우리 축구와 정치의 닮은꼴


월드컵이 한창이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공 하나에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 축구는 국민의 높은 기대와 달리 16강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선수들은 분명 최선을 다했고 홍명보 감독 역시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사랑을 감안하면 만족감보다는 실망감이 클 것이다. 우리 축구를 보면서 느낀 것은 한국 정치와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치를 대하는 우리 국민들의 속성이 축구에 고스란히 묻어난 것은 아닐지 되돌아보아야겠다. 과연 무엇이 한국 축구와 한국 정치를 닮은꼴로 만들어 놓은 것일까.

한국 축구와 한국 정치 모두 예견에 대한 외면, 컨트롤타워의 부재, 문제점에 대한 망각을 공통점으로 하고 있다. 우선 예견에 대한 외면이다. 객관적인 FIFA 랭킹에서 같은 조에서 가장 낮았다. 국가대항전에서의 경쟁력이 낮다는 예고지표다. 월드컵 개막 전,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이나 축구전문가들은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처방은 수비조직력을 단기간내 끌어올리고 한국대표팀만의 확실한 득점 루트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되돌아보면 이런 전문가들의 예견과 처방에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 한국 정치 역시 예측에 대한 외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양안전심판원은 오래 전부터 해양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운행자의 과실임을 밝혀왔다. 선박의 개조, 화물의 과적, 안전사고의 구난 문제, 관피아 결탁 등 수많은 적폐(積弊)에 대해 서해 페리호 사고, 경주 콘도 사고, 성수대교 사고, 삼풍백화점 사고 등으로 예견해 왔다. 동부전선 GOP 임병장 총기난사 사고 역시 2005년 경기도 연천 군부대 총기난사 사고로 예견될 수 있었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수많은 경미한 징후들이 존재한다.

다음으로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2002년 4강 신화를 달성할 때 한국 축구에는 히딩크 감독이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있었다. 모든 전술과 작전은 히딩크 감독의 구상대로 진행되었다. 수비는 홍명보 선수가, 공격은 황선홍 선수가 이끌었다. 누군가를 중심으로 90분간 선수 전원을 유기적으로 묶을 수 있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감독과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컨트롤타워는 있었는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많았다. 하지만 팀 전체를 하나로 이끌며 조율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면 일부 사람들의 비판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FIFA 랭킹 20위인 멕시코는 개최국인 세계최강 브라질과 무승부였다. 16강 진출에도 성공했다. 골키퍼 오초아의 선방이 빛났지만 팀의 중심에 주장인 마르케스가 있었다. 현재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는 '인사논란'이다. 대통령 부정평가는 긍정평가보다 높아졌다. 부정평가의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의 '인사문제'다. 국가개조와 경제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국무총리를 포함한 유능한 각부 장관의 임명이 매우 중요하다. 바로 그들이 국가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문제점에 대한 망각이다. 한국 축구는 이번 브라질 월드컵 훨씬 이전 여러 문제점에 봉착했다. 2006년과 2010년 월드컵을 거치며 불안한 수비 조직력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박지성과 이영표를 이을 차세대 미드필더와 공격형 수비수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홍명보 감독이 자리에 앉기까지 사령탑이 2차례에 걸쳐 교체되었다. 예선전에서는 이란에 두 번이나 무릎을 꿇으며 수비조직에 허점을 드러냈다. 월드컵을 앞두고 16강 진출에만 열을 올릴 뿐 과거 발생한 우리 허점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은 것이다. 한국 정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선박 및 대형 교통사고, 군부대 안전사고, 각종 대형 재난재해 등이 있을 때마다 구호처럼 대책은 등장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옛날 이야기처럼 기억에서 사라진다. 과연 10년 뒤 세월호 사고의 아픔을 우리는 얼마나 지혜롭게 풀어가고 있을까.

한국 축구와 한국 정치 모두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누구 한 사람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함이 아니다. 단재 신채호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모든 이의 가슴을 울리는 교훈이다. 과거와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않고서 미래의 선진축구는 요원하다. 하물며 국가 존망이 걸려 있는 한국 정치는 더 말해서 무엇하랴.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