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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 |
관계 형성되기 위해선
단순히 협력 선언만으론
아무런 의미 없어
신뢰성과 책임감 노력통해
서로에게 익숙해져야
'뻥연비'가 연일 이슈다. 국내외 자동차회사들의 연비과장 논란은 국토교통부가 일부 자동차의 실제연비가 신고치보다 낮게 측정돼 시정명령을 내린 근거로 소비자들이 연비 부풀리기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국토부의 이번 시정명령에 앞서 산업통상자원부가 해당 연비표시가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린 적이 있어 정부 부처간 엇갈린 조사결과로 인해 향후 자동차 연비 논란이 쉽게 잦아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의 청구금액(개인별 최저 90만원에서 최고 300만원) 때문에 산업계에 미칠 영향력이 너무 크다며 벌써부터 부정적인 보도 프레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이번을 계기로 대선 경제민주화 공약 중 하나였던 공정거래 분야의 '집단소송제 확대'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기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자동차에 안전벨트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반세기 전인 1964년 미국의 랠프 네이더(Ralph Nader)는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이 소비자의 안전과 생명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제너럴 모터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그는 치열한 공방끝에 승리해 '네이더리즘'(Naderism)이라고 일컬어지는 대중적 소비자운동을 본격화시켰으며, 동시에 자동차의 안전벨트와 에어백을 보편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만약 당시 랠프 네이더가 'Unsafe at Any Speed'라는 책을 통해 안전문제를 이슈화시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라는 편리를 선택하기 위해 자신의 귀한 생명을 담보해야만 했을지를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물론 자동차 연비부풀리기가 과거 네이더 시기의 자동차 안전성만큼 소비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이슈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엄연히 성능미달인 제품을 시장에 버젓이 내놓고, 정확한 정보제공 없이 오히려 소비자를 기만하는 허위과장 광고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계속적으로 취해 왔다면 이는 업계의 일시적 타격이 크다는 엄살만으로 그동안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의 면피를 주장하기에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기업은 가치를 통해 스스로를 차별화시키고, 소비자들과의 포괄적인 협력관계 구축을 통해 기업의 미션과 비전을 공유하는 활동에 집중해야 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흔히들 기업은 이러한 시장구조나 경쟁원리를 '마켓 3.0'의 특징으로 규정하거나, 이와 같은 역할변화를 기반으로 구체화된 다양한 공유가치창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이유는 현재의 성숙해져만 가는 시장의 포화성과 잠재시장의 곤궁함을 개선시킬 수 있는 혁신의 단초를 제공하는 힘이 바로 소비자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소비자들의 '참여'와 '협력' 없이는 기업들의 미래 지속가능한 성장을 전망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협력이 진정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바로 친밀감이나 유대감과 같은 쌍방이 가지는 감정적 일치성과 신뢰성을 기반으로 한 애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이다"라는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의 유명한 대화처럼 시장에서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소비자와 협력해야 한다는 규범적인 선언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사막여우랑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어린왕자에게 사막여우는 매일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 자신을 보러오는 '신뢰성'과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 상대를 보살피겠다는 의지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변하지 않는 신뢰성과 자신의 희생을 감내하는 책임감은 결국 협력적인 관계를 가능케 하는 길임을 우린 어린 시절의 동화를 통해 배웠다.
민주주의를 살고 있는 우리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사실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시장에서의 최종 권한이 소비자에게 있다는 '소비자주권'의 개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기업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소비자지향적인 기업 활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연비부풀리기가 신뢰성과 책임감을 통해 소비자와 진정으로 협력하는 자동차업계의 노력으로 기업과 소비자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