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훈 대진대 행정학 교수
실패하는 기업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신생조직일 뿐
'설립만하면 정부지원 있겠지'
안일한 생각과
'설립자에게만 기대'는
의존성은 절대 안된다

2012년 이전에는 미미했던 협동조합이 7월이면 5천개에 달한다고 한다. 협동조합의 정신적 구루의 하나로 알려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자마니 교수도 믿기지 않는다고 할 정도의 성장세다. 무엇이 2012년 이전에는 미미했던 협동조합의 열기를 불러일으키는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압력요인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가 지속되면서 중산층이 무너졌다. IMF 추산 2010년 한국 총 GDP는 1조6천억달러 정도인데 이중 25%가 4개 대기업의 몫이다. 문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 재편이 고용창출은 적고 소득을 상위 1%에게 집중시킨다는데 있다. 사회경제조사에서 과거에는 '당신은 상류층·중산층·빈곤층 중 어디에 속하느냐'를 물었는데, 요즘 조사는 서민층을 분류항목에 넣고 있다. 서민층에 속한다고 응답하는 사람이 62.3%를 차지했다(경향신문&현대리서치 2013 한국인의 삶 조사: 부유층 1.6%, 중산층 29.6%. 빈민층 5.9%). '서민층'의 증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실패가 원인이다. 정부의 대책도 별무신통이 되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은 커졌다.

둘째는 기회요인으로 볼 수 있는데, 경제활동 참여자가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데서 온다. 인간은 결국 행복추구자인데, 과거에는 경제소득 증가가 행복의 선행요인이었지만, 이제는 나눔·배려·신뢰·공동체의 안정감 등이 행복의 조건이 되고 있다. 캐나다의 그레그 맥레오드 신부는 그것이 구성원간의 결속력이라고 했다. 협동조합의 구성원들은 자신을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와 지역사회를 일할 수 있는 끈끈한 인간애로 무장한다. 협동조합 틀 안에서 도구가 아니라 서로가 파트너가 된 것이다. 자본주의가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은 압력으로 작용하고,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살고 싶은 욕구는 기회요인으로 작용하면서 협동조합의 수는 증가하고 있다.

협동조합을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경제적으로 약소한 처지에 있는 소비자, 농·어민, 중소기업자 등이 각자의 생활이나 사업의 개선을 위해 만든 협력조직이다. 우리나라의 협동조합 기본법에 의하면 '협동조합'이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업조직을 의미한다.

2000년 후반의 세계경제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상당수의 기업들이 어려움을 당했다. 하지만 협동조합경제는 상대적으로 견고했다. 몬드라곤협동조합 복합체의 경우 금융위기가 닥치자 협동조합간 도움을 주며 극복했고, 4개 대륙에서 10만명을 고용하고, 매출액 규모 스페인 7위, 고용 규모 3위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는 창업 당시부터 지역을 토대로 하고, 지역의 인재들이 지역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시작했고, 또 구성원들이나 구성 기업을 배려하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기업과는 달리 민주적인 운영을 하고, 또 사회적 배려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마니 교수는 이를 "삼성은 현대를 돕지않지만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은 매년 순이익의 3%를 협동조합 펀드(coop fund)에 출자해 어려움을 겪는 협동조합을 돕도록 연대가 시스템화했다"며 "협동조합은 지역화돼 있어 수익에 따라 쉽게 다른 지역으로 옮기지 않으며, 지역사회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사람이 살아가는 궁극적 현장인 지역사회를 베이스로 해 스스로 문제를 풀어가는 사회적 경제시스템인 것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만능은 아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대안의 하나일 수는 있으나 대체 수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법률적 근거가 없어서 설립이 제한된 것이 풀렸을 뿐이고 성공적인 협동조합들을 배우면서 자본주의 기업이 실패하는 영역에서 존립해 나가야하는 신생조직일 뿐이다.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기업의 사례에서처럼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만 하면 정부가 지원해주겠지 하는 근성과 설립자에게만 기대는 의존성은 금물이다. 협동조합의 성공은 지역사회의 번영에 공헌하는 개인들의 결속과 노력을 요구한다.

/허훈 대진대 행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