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문재 안양대 국어국문학교수
인사청문회 보고 있자니
'한국과 그 이웃…'에 나오는
100년전 조선의 모습
보는 것 같아
놀랍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부끄럽기만…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1831~1904)는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최초 여성 회원으로서 빛나는 활동을 했다. 그녀는 65세라는 나이에 조선에 처음 발을 딛는데 1897년 고국으로 돌아가기까지 네 차례나 방문한다. 비숍여사는 귀국한 해에 고종과 명성황후는 물론이고 조선 민중의 삶을 깊은 애정을 갖고 살핀 기록을 모아 뉴욕과 런던에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을 출간한다. 이 책은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는다. 청일전쟁·명성황후시해·아관파천·러일전쟁 등으로 치닫는 조선과 주변 국가의 정세가 서양인에게 관심을 끌었고, 학문적인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철저한 답사를 통한 기록이 풍부했을뿐 아니라 정확하고도 날카로운 분석과 독창적인 묘사로 조선을 생생하게 소개해준 것이다.

비숍 여사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은 김수영 시인의 시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김수영 시인은 '거대한 뿌리'에서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고 소개한 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남자로서 거리를 무단 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내시, 외국인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습관을 가진 나라를/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 번도 장안 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그렸다. 이와 같은 내용은 비숍 여사의 책에 나오는 상황이다. "저녁 8시경이 되면 대종(大鐘)이 울리는데 이것은 남자들에게 귀가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며 여자들에게는 외출하여 산책을 즐기며 친지들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시간이 되면 "여인네들"과 "장님과 관리, 외국인의 심부름꾼, 그리고 약을 지으러 가는 사람들이 통행금지에서 제외되었다. (중략) 자정이 되면 다시 종이 울리는데 이때면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남자들은 다시 외출하는 자유를 갖게 된다. 한 양반가의 귀부인은 아직 한 번도 한낮의 서울 거리를 구경하지 못했다고 나에게 말하였다"고 적고 있다. 비숍 여사가 처음 조선을 방문한 시기나 명성황후에 관한 얘기 등은 사실과 다르지만 김수영은 비숍 여사의 글을 인용한 것이 분명하다.

김수영 시인은 같은 작품에서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노래했다. 그리하여 진보주의·사회주의·통일·중립·은밀·심오·학구·체면·인습 등의 추상적인 개념이나 치안국·동양척식회사·일본영사관·대한민국 관리 등 반민족적이고 반민중적인 대상들을 공격했다. 그 대신 요강·망건·장죽·종묘상·장전·구리개 약방·신전·피혁점·곰보·애꾸·애 못 낳는 여자·무식쟁이 등이 좋다고 노래했다. 이와 같은 역사의식 또한 비숍 여사로부터 영향받은 것이다.

비숍 여사는 같은 책에서 "관료들 중 가장 악명 높은 악당이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김옥균의 암살을 사주한 살인자가 탁지부 대신이 되었고, 뇌물 수주로 고발된 바 있는, 오직(汚職)으로 악명 높은 전과자가 법부대신이 되었다. 관직의 공공연한 매매가 줄을 이었고 국정을 악용하여 이권을 거머쥐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고, 또 "서울의 법무부는 부정을 행하며 뇌물을 받는 일 이외에는 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인들은 어떤 행정적인 계기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들"인데 관리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간파한 것이다. 그렇지만 비숍 여사는 조선의 민중을 발견하고 희망을 노래했다. 책의 서문에서 "한국인들은 대단히 명민하고 똑똑한 민족"이라고 밝혔고, 마지막 말에서 "희망은 한국의 바다에, 땅에, 간난에 견딜 수 있는 국민 속에 있다"고 적었다. 김수영 시인은 비숍 여사의 그와 같은 민중의식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비숍 여사는 얼마 전 한 국무총리 후보자가 소개하면서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국무총리 후보자는 어느 강연에서 "조선 민족은 게으르다"고 한 그의 발언이 문제되자 자신의 얘기가 아니라 비숍 여사가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자 비숍 여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는데, 그와 같은 과정에서 비숍 여사가 일반인에게 주목받게 된 것이다.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은 상당히 늦어 1994년 '영원한 제국'의 작가인 이인화에 의해서 이뤄졌다. 이 글에서 인용한 부분은 모두로 번역자의 것이다.

국무총리나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보고 있자니 100년 전 조선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놀랍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부끄럽기도 하다. 정치공작·탈세·탈법·위장전입·논문표절·병역비리·위증 등등 온갖 비리를 저지른 이들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니, 어찌 참담하지 않겠는가.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맹문재 안양대 국어국문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