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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
발생 이유 의문만 남기고
정치권에선 진실규명도 못해
행정·사법·입법 신뢰 바닥치고
총체적 불신 사회로 치달아
지도층 각성과 노력은 언제쯤…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 정도 됐다. 여전히 사고에 대한 정확한 발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고의 배후 인물로 추정되는 사람은 오랫동안 행방불명이었다가 급기야 시체로 발견됐다. 시체로 발견된 인물의 가족도 검거됐다. 하지만 발견된 시신이 언제 사망한 것인지,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시신이 실제인지 또는 가짜인지조차 의문스러워한다. 방송에서는 이를 두고 갑론을박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쯤 되면 마치 인기있는 미스터리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다. 바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이 넘었지만 사고에 대한 진실규명은 답보상태다. 그냥 답답한 상황이 아니라 '미스터리'가 되고 있다.
미스터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도저히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일이나 사건'으로 설명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 아닐까. 미스터리한 상황이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더욱 몰입할 수 있는 명장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거나 오래 지속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심지어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마저 미스터리로 인식하고 싶어질 정도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우선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사고가 충격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아시아나 항공기의 미국 공항 불시착 사고만 하더라도 조종사의 비행 미숙인지 항공기 기체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지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에게 명확한 인식이 없다. 그렇다면 항공사에서는 조종사의 미숙한 이착륙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이뤄졌다는 말인가. 기체결함이었다면 유사한 다른 항공기에는 위험을 예방하는 조치가 이뤄졌다는 말인가. 어떠한 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여전히 미스터리한 상태에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스터리를 만드는 또 다른 이유로는 사고발생 과정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경주 콘도붕괴 사고에서 우리는 다수의 청춘을 떠나 보내야 했다, 하지만 사고발생 과정에 있어 폭설로 인한 행사진행 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명확하지 않다. 행사 진행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왜 강행된 것일까. 시설 안전과 투숙객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콘도측은 왜 행사를 저지하지 못한 것일까. 학교는 학생들의 자체 행사라 할지라도 현장에서 안내하고 관리할 교직원을 왜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일까. 단체 행사장의 원천적 부실공사는 응당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과정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끝으로 미스터리 발생의 근본원인은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한 불신이다. 불신은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국민에게 명확하게 이해시키지 못한 정치권을 비롯 우리 사회 지도층의 책임이 크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1월 실시한 우리 사회의 신뢰 조사결과(전국 1천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3.1%P)는 충격적이다. 10점 만점에 국회는 3.4점으로 최하위였고 검찰을 포함한 사법부는 5점이었다. 언론은 4.6점에 그쳤고 정부 신뢰는 절반 수준인 5점이었다. 세월호사고 100일이 넘었지만 사고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 그리고 대책마련은 요원해 보인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난 1월의 국민신뢰보다 더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총체적인 '불신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사법·입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낮은 신뢰는 좀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유병언과 그 가족들을 체포하거나 조사하면 세월호 사고의 수습은 마무리 되는 것인가. 여전히 사고에 대한 수습은커녕 더 큰 미스터리만 남게 된 것이다. 어린시절 읽었던 '벌거숭이 임금님'과 '양치기 소년'은 무엇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감동적인 교훈으로 마무리 된다. 왜냐하면 동화나 우화이고 현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동화나 우화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미스터리 공화국'이 됐다. 불신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지도층의 근본적인 각성과 노력이 앞서야 할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