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부패척결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중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가 비리를 방치한 탓에 도처에서 구린내가 진동하고 있음을 개탄하는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부패정도를 지수화해 매년 세계 각국의 랭킹을 발표한다. 부패인식지수(CPI)는 각 나라 공무원과 정치인들 사이에 부정부패가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수치화한 것으로 국가청렴도나 기업경영·신용평가 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경제력과 부패 간에는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후진국일수록 부정축재가 심한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조사대상 176개국 중 46위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다. 더 걱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의 부패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2009년의 39위를 정점으로 2011년 43위, 지난해 46위 등으로 순위가 계속 뒤로 밀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비리 청산을 호언했으나 집권후 CPI는 더욱 떨어졌다. 경제와 비리가 동반성장하는 기현상이 확인된 것이다.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OECD가 발표한 '2014 더 낳은 삶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36개 조사대상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지수는 작년의 6.98에서 금년에는 7.05로 아시아 16개국 중 중국과 함께 바닥권을 형성했다. PERC는 한술 더 떠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부패수준이 남아있는 유일한 선진국"으로 "고위층의 부패가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해 '대한민국=관피아공화국'이란 국제공인(?)을 받았다. 부패국가로 낙인찍히면 해외자본 유치는 물론 자국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상당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구시대적 성과만능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과정은 중요치 않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인 것이다. 유전무죄 인식이 발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압권이었다. MB정부는 2008년 집권과 함께 국가청렴위원회를 국민권익위원회로 축소통합했다. 또한 반부패나 청렴성 등을 불필요한 규제로 간주해서 2005년 3월에 정부와 기업, 정치와 시민사회 간에 체결한 투명사회협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국가청렴위는 김대중정권 말기인 2002년 1월에 부패방지위로 출범해서 2005년 7월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반부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위한 시민적 의지나 노력이 퇴색한 것은 설상가상이다. 작금 세간에 '빨갱이'타령의 빈번한 회자가 반증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술 더 떴다. 후보시절에 재벌의 전횡을 견제하는 내용의 '소액주주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제'와 '다중대표소송제'의 도입을 공언했으나 집권과 함께 '나몰라라' 하고 경제민주화 멘토인 김종인 교수까지 내친 것이다. 관피아 척결을 목적으로 한 '김영란법'이 1년여 동안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어서 세월호가 공리주의의 발목을 잡았다. 천민자본과 해운탐관들의 야합이 대형 참사의 배후요인이란 지적이 힘을 받은 탓이다. 정부는 지난달 말에 부패척결추진단을 발족하고 비리의 발본색원을 선포했다. 검찰의 정치인 및 해피아 관련 수사가 신호탄으로 추정되나 성과는 의문이다. 집권 중반의 박 대통령이 오매불망 효율성만 강조하니 말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존 롤스 교수는 "정의는 사회제도의 으뜸가는 덕목"이라 설파했다. 국가부패지수가 1단위 감소하면 GDP는 무려 2.64%씩 상승한다.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경제활성화는 연목구어란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