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굳은살 박힌 손으로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은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넘어 사랑 그 자체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지난 60·70년대까지만 해도 어머니 손을 거치지 않은 음식은 없다시피 했다. 간식이라기보다 특식에 가까웠던 것이 라면이었고 쌀이 부족해 칼국수, 소면, 수제비를 끓여 먹던 것이 불과 20~30년 전 일이다.
그러나 요즘은 즉석식품(Instant) 천지다. 양식은 물론이고 중식, 일식 심지어 전통 한식까지 즉석식품으로 포장돼 쏟아진다. 안 나오는 음식이 없을 정도다. 백화점이나 할인점들도 즉석식품 코너를 매장 한가운데 차려 놓아 그 인기를 가늠케 하고 있다.
우리 밥상에는 어머니 손맛이 가득 밴 음식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대신 누구 입에나 들어맞는 즉석식품이 빈 자리를 메우고 있다. 편리성을 강점으로 한 즉석식품의 대두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큰 원인이 있다. 서구사회처럼 나홀로 세대, 맞벌이가정이 늘어나면서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쓰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신모(29·회사원)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원룸에서 혼자 사는 신씨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용기밥에 미역국, 꼬마김치를 챙겨먹는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출근시간에 쫓겨 아침 먹을 생각도 못하고 아예 굶은 채 집을 나서기 일쑤였다. 아침을 거르는 일이 잦아지자 위장병이 생기는 등 건강이 나빠져 아침을 꼭 챙겨 먹기로 맘먹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즉석식품. 조리해서 먹는데까지 10분이면 충분하다. 또 그릇을 씻는 번거로움도 없다. 더구나 한끼 식사비로는 저렴해 경제적인 부담도 없다.
요즘 그가 즐기는 식단은 1천200원짜리 용기밥과 1천400원짜리 북어국 또는 해장국에 500원짜리 포장김치다. 이 정도면 오전 근무시간을 든든하게 버텨주는 아침 식단으로 손색이 없다. 신씨는 별다른 일 없이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양식 레토르트 식품이나 테이크 아웃 음식을 메뉴로 별식을 하기도 한다.

맞벌이 이모(39)씨 부부 역시 즉석식품을 애용하는 편. 아이들 등교 챙기고 출근 준비하다 보면 아침 식사를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은 엄두도 못내기 때문이다. 이씨 부부는 주말에 백화점에서 1주일치 즉석김치와 다양한 즉석식품을 사서 매일 메뉴를 바꿔 먹고 있다. 밥만 전기밥솥에 지어놓으면 끼니를 거를 염려없이 출근길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즉석식품의 범람은 먹거리의 주객전도를 일으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인스턴트 식품의 대명사 '라면'이 그동안은 식단에 보완적인 역할을 했다면 최근 즉석식품은 당당히 메인요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식품매장도 채소와 고기류를 제외하면 가공식품이나 조리식품이 대부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양식의 경우 3분 정도 전자레인지에 조리하면 먹을 수 있는 각종 스테이크와 미트볼, 스파게티, 냉동피자 등 다양한 메뉴가 나와 있다. 여기에 물에 데워 먹는 자장면이나 용기에 끓는 물만 부어 먹는 우동과 같은 중·일식도 예전보다 고급화되고 있다. 요즘 특기할 만한 것은 전통 한식 메뉴의 즉석식품화다. 역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밥은 백미밥뿐 아니라 흑미밥도 출시됐다. 미역국, 북어해장국, 곰탕, 콩나물국밥, 육계장 등 거의 전통 한식 메뉴를 망라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 가정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편리함을 좇아 즉석식품에 의존하는 것은 영양학상 위험한 발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종종 즉석식품에서 식중독균이 검출되거나 불균형한 영양 섭취가 사회문제로 등장하는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또 음식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방부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경희대 한의대 관계자는 “즉석식품은 대부분 칼로리가 높은 반면 영양가는 빈약하다”며 “즉석식품에 의존하기보다 자연식품을 조리해 먹는 자연식 식단으로 영양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 즉석식품 종류
즉석식품 시장이 엄청난 속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즉석식품은 시간에 쫓기는 바쁜 현대인들의 기호에 맞춰 간편성과 우수한 맛, 깔끔한 뒤처리 등을 앞세워 전통식품을 밀어내고 시장을 장악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즉석식품의 종류는 끓는물에 3분 정도 데워 먹는 '파우치 형'과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는 '레토르트 식품' 그리고 최근에 붐을 일으키고 있는 '테이크 아웃' 등이 있다.
파우치의 원조는 컵라면이다. 면발과 스프를 넣은 보온용기에 물을 부으면 간편하게 익는 편리함 때문에 지난 90년대 중반까지 고속성장을 계속해 왔지만 최근에는 레토르트 식품에 밀려 시장에서 후퇴하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에 보급된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 속속 개발되면서 최근 들어 레토르트 식품의 인기가 상한가다.
레토르트 식품은 처음에 햄버그 스테이크와 미트볼로 시작해 최근에는 탕수완자, 난자완자와 같은 중화요리는 물론이고 꼬리곰탕 등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