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방문행사 이틀째인 이날 오전 남북가족들은 재북가족의 숙소인 금강산여관 객실에서 개별상봉을 갖고 사진과 선물 등을 교환하면서 50여년 못다한 얘기를 나눴다.
안용관(81·안산시 사동)씨는 북녘의 아내 윤분희(74)씨와 아들 시복(53), 딸 순복(51)씨를 만날 예정이었으나 아들이 지난해 11월 사망했다는 비보를 전해듣고 오열했다.
전날에 이어 두번째 만남이었지만 안씨 가족의 개별 상봉은 서먹서먹하게 시작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 순복씨가 “어제 잘 주무셨어요”라고 물으며 말문을 열었지만 아들을 만나지 못함이 한으로 맺힌 안씨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뿐 아내와 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안씨는 또 정성껏 준비해간 금반지와 속옷, 양말 등 선물을 전달하면서도 다섯살이나 연하지만 훨씬 늙어버린 윤씨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할뿐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날 오전 10시12분부터 낮12시까지 금강산여관 객실에서 진행된 개별상봉에서 지난 26일 별세한 어병순(93)할머니를 대신해 방북한 이부자(62)씨는 북측의 언니 이신호(66)씨와 눈물의 추도식을 가졌다.
남북 가족들은 오후 금강산 현지에 비가 계속 내리자 당초 삼일포 대신 구룡연을 1시간여간 동행 관광했다.
금강산 여관에서 구룡연까지의 이동과정에서 남북가족들은 버스에 함께 올라 금강산을 둘러보는 동승참관도 이루어졌다.
한편 이날 일정을 마친 남측 방문단은 30일 작별상봉후 설봉호를 이용해 속초로 귀환할 예정이다. <연합>
◆ 금강산상봉 이모저모
○…50년 수절 끝에 북쪽 남편 임한언(74)씨를 만난 정귀업(75)씨는 “바람처럼 달리던 청년 남편이 백발노인이 되어 나타나다니, 기다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라고 세월을 한탄했다.
늙은 남편은 “결혼했다”며 “홀로 고생했다”고 미안함을 대신했다.
또 6·25전쟁 때 남기고 온 당시 세살배기 딸 필순(55)씨를 만난 오정동(81)씨는 “(딸이) 제 어미를 꼭 닮았다”고 말했다.
이근택(83)씨 역시 북에 남은 맏딸 성옥(58)씨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버지 없이 살았어도, 자식 넷을 잘 키웠다”고 치하했다.
○…북측 주최 만찬이 열린 금강산 2층 여관에는 지난 99년 6월 이산가족 문제해결과 비료지원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베이징(北京) 남북차관급회담의 북측 단장이었던 박영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 부국장은 2층 로비 구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쪽에서 만찬 진행 상황을 30여분간 지켜봤다.
일부 남측 기자들이 아는체를 하자 박 부국장은 딴전을 피우며 “사람 잘못봤다”고 부인했으나 일부 북측 관계자들이 그를 확인해 주었다.
○…29일 낮 12시30분부터 2시간동안 금강산여관 2층 로비에서 열린 가족동석 오찬에서 남측 최구배(68)씨가 여동생으로부터 생일상을 받아 눈길.
최씨는 “50년만에 여동생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복에 겨운데, 이렇게 생일상까지 받게 되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여동생 인순씨는 연방 오빠 최씨에게 맥주를 따르며 “오래오래 살아 통일되어 제대로 된 생일상을 차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남북 가족들은 당초 1시30분까지로 정해진 오찬시간을 1시간 넘겨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일부 가족들은 주최측에서 틀어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렀다.
김남수(63) 할아버지는 여동생 완수(62)씨와 완수씨 친구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을 카메라로 연방 찍었다.
김 할아버지는 “사진을 가져가 이번에 오지 못한 가족들에게 보여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동생과 나눈 대화를 녹음하기도 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