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사람들이 많다.
루게릭병 환자 돕는
흥미롭고 눈길 끄는
얼음물 뒤집어쓰기 처럼
재미있는 일 이어졌으면…


쉽게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가장 풍요롭게 산다. 재미의 즐거운 비밀은 '탁월함'이라는 낱말에 담겨 있다. 누구나 살면서 많은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벽은 우릴 멈추게 하려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일깨워 주려고 있는 것이다.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가장 현명하고 간단한 답은 웃음이다. "나는 항상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한다. 그렇게 하면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말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이다. 잡은 손의 온기(溫氣)를 잊지 않는 것이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선물은 무얼까. 재미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요즘 루게릭환자를 돕기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가 유행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운동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해 열풍처럼 번져가고 있다. 참여자가 얼음물 샤워를 하거나 100달러를 기부하고 다시 세명을 지목한다. 가장 전파력이 강한 기부캠페인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인증샷을 보노라면 그 표정에 절로 웃음이 난다. 영상·네트워크 시대에 기발한 착상이다. 빌 게이츠·메시 등 세계적인 인물도 나서서 얼음물을 뒤집어 쓴 영상이 재미를 더 한다. 우리나라도 연예인·운동선수·정치인 등 다양한 인사들이 나섰다. 요즘처럼 재미없는 세상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재미는 사람을 부른다. 루게릭병을 모르던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 병은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힘을 잃어가며 생기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우리나라에도 1천500여 명이 앓고 있다. 희귀병인 만큼 병을 세상에 알리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블랙홀과 양자우주론 등 혁명적 이론을 정립한 스티븐 호킹 박사도 40년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루 게릭(Lou Gehrig)은 미국 양키스 프로야구단의 전성기를 이끌던 전설의 4번 타자다. 그가 38세 때,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으로 사망했다. 훗날 그의 이름을 따 루게릭 병명이 생겼다. 너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짐을 나눠 들어 주라는 말이 있다. 재미있는 삶을 위한 구호가 절실한 때다.

지난 주말에는 남양주시 진접읍 한 시인의 포도밭에서 재미있는 행사가 있었다. '포도밭예술제'다. 꽃을 노래한 작고시인 김춘수가 포도밭을 일구고 있는 제자 시인에게 포도밭에서 예술제를 펼쳐보라는 제의가 발단이 돼 5년전부터 열리고 있다. 포도밭이 아름다운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포도나무에 시와 그림을 걸고 공연을 펼쳐 관광객을 유치하는 풍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의 시작 필사본 노트, 시집, 시와 그림 등을 전시하고 시낭독과 함께 작은 음악회도 포도밭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문인뿐 아니라 일반관광객 등 300여 명이 찾을 정도로 자리매김됐다. 재미가 사람을 부르는 행사장이다. 특히 올해는 김춘수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시집·시론집·수필집·친필편지가 전시됐다. 1959년 발표한 시집 '꽃의 소묘' 탈고과정을 볼 수 있는 필사본 노트가 있어 대표작 꽃이 어떻게 형상화됐는지도 알 수 있었다. 농산물개방으로 농촌이 어려운 때, 이 역시 농업인을 돕는 기발한 착상이다. 예술은 이처럼 발랄한 상상을 던진다. 참여한 문인만이 아니라 찾아온 관광객도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축제장인 듯싶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다. 누군가가 자기를 필요로 할 때 거기에 있어준다는 것도 축복이다. 둘 다 쉬운 일은 아니기에 그렇다. 사회 곳곳에는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을 향한 손길은 일회성 캠페인이면 안 된다. 동정이나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대중은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단순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재미있을 때 거기에 반응한다. 방송프로도 그렇다. 재미없으면 이내 채널을 돌린다. 광고 카피도 그렇다. 재미있으면 눈길이 가고 귀가 열린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는 얼음물 뒤집어쓰기가 기부 모델로 전 세계적으로 번져가는 이유다. 사회가 날로 기계화되고 있어 재미있는 행사는 기계가 잘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유다. 주변에 재미있는 일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