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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
노하우 상상 초월
은행구성원 대다수는
정치에만 매달리며
금융환경 악화 외치지만
위기감 공유하는지 의문
세상만사가 그렇듯, 은행을 지배하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엄연히 존재한다. 전자가 명분이라면 후자는 현실이다. 은행은 명분부터 내세우지만 은행 경영진은 현실적 이해부터 먼저 따진다. 은행내에서 공식화하지 않는 계산이 바로 정치인 셈이다. 자신이나 자신의 패거리에 득인지 실인지를 따지는 셈법이다.
현재 금융계를 뒤흔들고 있는 두가지 사안도 명분 뒤에 가려진 정치의 냄새가 강하다. 우선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조기 통합이다. 하나는 2012년 외환은행과 통합하면서 5년간의 유예 기간에 합의했다. 지금은 그 합의마저 깨면서 조기 통합을 관철하려 한다. 명분은 금융환경 변화다. 지금 합치지 않으면 두쪽 다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동시에 외환은행의 반발을 고려해 인원이나 지점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희한한 주장이고 계획이다. 합병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면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그것 없는 합병 강행은 외형적으로 통합을 과시하겠다는 의미 외에는 없다. 성과를 보여주겠다는 현재 경영진의 정치적 계산이다. 그 이전에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전격 인수한 것 자체가 이전 경영진의 정치적 속내가 작용한 것이었다.
KB국민은행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외형적으로야 은행 전산시스템 교체에 따른 내부 잡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속내를 들춰보면 경영진간 갈등이다. 지금에 와서는 금융감독 당국도 손을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발단이야 어떻든, 알력을 빚는 두세력이 대놓고 정치를 벌이고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물론 어떤 기업에도 정치는 있다. 그것은 사람이 모인 조직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하지만 은행내 정치는 단순히 조직내의 사내 정치(office politics)에 그치지 않는다. 은행 외부까지 가세한 거대한 계산과 갈등구조가 되고 말았다. 구성원 대부분이 여기에 달려들면서, 은행 본연의 정체성이나 경쟁력까지 흔들릴 정도가 됐다. 어쩌다 우리 은행들이 이렇게 정치 과잉의 장(場)이 돼 버렸을까?
우리 은행들만의 몇가지 환경요소에 기인한다. 무엇보다도 기성 정치권이 은행인사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의 노골적인 금융권 장악의지나 노하우는 이제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아예 금융권 인사를 정권의 부산물처럼 여기는 분위기다. 예전 널리 쓰였던 관치 금융이나 낙하산 인사라는 말이 오히려 무색할 정도다. 이것이 사내 정치가 은행안에만 머무르지 않는 이유다.
둘째, 외환위기 이후 상당수 국내 은행들이 자의반타의반으로 통합됐다. 상업은행 30여개가 10개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두서너개의 은행이 합쳐져 물리적으로 한 은행을 이뤘지만 화학적 결합이 쉽지는 않았다. 그 결과 은행내부에서는 깊은 골이 생겼다.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주요 보직을 놓고 줄서기 관행이 노골화됐다.
마지막으로, 은행의 생존환경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구성원 다수가 정치에만 매달려도 되는 환경변화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은행들은 위기가 닥쳐도 납세자의 돈과 정부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됐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누군가 먹이를 준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 야생동물은 결코 사냥을 하지 않는다. 은행들은 입만 열면 금융환경 악화를 외치지만, 실제 은행구성원들이 뼈저리게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결코 망하지 않는 은행에서 구성원들은 내가 혹은 내가 속한 라인이 잘 나가는지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것이 개인으로서는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은행의 정치과잉을 막을 방법은 그 토양을 제공한 쪽이 먼저 풀어야 한다. 정치권이 스스로 은행인사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놓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래서 현재 우리 은행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를 당장 풀기는 어렵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