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한국학연구소·인천시립박물관·경인일보가 공동주최하는 2014년도 하반기 인천시민인문학강좌는 <바다와 섬의 인문학 '지구(地球)'에서 '해구(海球)'로의 인식 전환을 위하여>를 주제로 정했다.

인문학의 주요 학문영역에서 바다와 섬은 어떻게 인식됐으며 그 곳이 지닌 인문적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바다와 섬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미래향(未來鄕)인지 등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바다는 인류문명사와 늘 함께 했다. 그리스문명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에게해 문명', 이집트 문명은 '지중해 문명권'이라 할 수 있다.

중국 당(唐)과 로마의 동서교류는 인도양을 매개로 한 '해양 실크로드'였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지난 2일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강좌에서 '해양문화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주제로 강의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육지보다 바다가 차지하는 면적이 더 많다. 이런 점에서 '지구(地球)'가 아닌 '해구(海球)'로 불러야 한다는 역발상은 나름 설득력을 지닌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한반도(韓半島)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3면이 바다와 접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경영 방침에 바다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절대적 과제를 부여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체로 바다의 사정에 어둡다.

미국의 해양전략사가 알프레드 사이어 머핸(1840~1914)은 이를 두고 "그들은 바다의 영향에 관해 특별히 관심이나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해상력이 여러 중요한 문제에 대해 결정적이고 심오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가볍게 보아 넘겨왔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백제와 고려는 해상강국이었지만, 조선은 바다를 무시한 그릇된 정책을 폈다. 해양력 쇠퇴와 수산정책의 부재로 어민은 왜구로부터 수탈을 당했고, 해양주권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주 교수는 "변방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오늘날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독도는 동해 변방 중의 변방이다. 그러나 그 변방은 한·일 외교전쟁의 중심에 있다. 제국과 식민이 교차하는 변방 바닷가로 가장 선진적인 사상·종교·과학기술, 심지어 전염병까지 들어왔으니 함부로 중앙과 변방을 분리할 일이 못 된다.

베이징에서 해금정책으로 강력하게 바다를 통제하는 동안, 중국 남부 바닷가에서는 해적이 번성하여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배가 밀어닥친 곳도 두말할 것 없이 바닷가였다.

홍콩·마카오, 심지어 한반도의 부산 왜관과 진해, 인천은 외국 문물과 제국의 침략이 들어오는 최전선이기도 했다. 그는 "변방은 문명과 문명이 교차하는 열린 광장이었고, 바닷길은 당대의 '하이웨이'였다"고 설명했다.

앞서 밝혔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지구(地球)가 아니라 수구(水球)다. 지구생태계는 생명부양시스템(Life support system)으로 움직이는데 바다는 강우, 기후, 영양염 순환, 오염물질분해, 생물생산, 서식지제공, 식량, 원자재, 문화적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그러나 산업화가 가져온 대량생산·대량소비는 인간을 부양하는 지구생태계 자체의 위기를 초래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저탄소 녹색성장 모델 등과 더불어 해양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이유다.

항구도시는 인류의 문명과 함께 시작됐다. 이제 해양도시는 워터프런트로 대변되는 인프라·문화적 재생을 토대로 새로운 도시로의 면모를 꿈꿔야 할 때다.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인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