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남부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을 넘어서 복잡미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예해방, 남북전쟁 패배 등으로 인해 남부는 양키(북부)에 대해 뿌리깊은 증오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남부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상하며 우아한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된 플랜테이션 농장주의 거대한 저택과 화려한 파티 등을 상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인종차별과 가난에 찌들은 암울한 지역을 떠올린다.
남부에 대한 북부의 경멸은 백인들 사이에서도 심하다. 북부 백인들은 게으른 남부 백인을 일컬어 화이트 트래쉬(white trash), 레드 넥(red neck) 이라고 비웃는다. 말 그대로 '쓰레기 같은 사람'이란 뜻이다. '레드 넥'은 '목덜미가 빨갛게 익었다'는 의미로 볕에 탄 무지한 백인 단순 노동자를 뜻한다. 또 남부의 여러 주들을 두고 바이블 벨트라고 비웃는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골수 기독교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실제로 앨러바마·미시시피 등 남부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 그래서 놀랄때 급히 나오는 "오 마이 갓"조차도 불경스럽다며 문제삼는 이도 있다. 반대로 골수 남부인들의 양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또한 만만찮다. 필자가 남부 어느 대학의 세미나 중 뉴욕 타임스 기사를 인용하자 양키신문을 언급 말라는 일부 참석자들의 항의에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
불과 1950년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남부는 북부에 싼 원료를 공급하고 가공품을 비싼 값으로 되사는 전형적인 식민지형 경제였다. 정서적·문화적으로 북부에 대해 우월주의에 취해 있던 남부로서는 엄청 자존심 상하는 구조였다. 남부가 성장한 것은 1970년대 후반.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 공장들이 크게 기여했다. 현대·기아차도 남부에 똬리를 틀어 이 지역 경제발전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남부 주들이 점차 살만해졌고 '양키들이 목화밭을 구경오던 시절에서 이제는 살기 위해 남부로 온다'는 말들이 떠돌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남부의 가난한 흑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북쪽으로 이주한다. 미주리·네브래스카 등등 중북부 공장지대가 커지면서 남부 흑인들의 대규모 인구 유입이 시작된 것이다.
흑인 시위사태로 지구촌의 관심을 모은 미주리 퍼거슨 시도 이같은 흐름의 중심에 있다.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흑인 인구가 급증, 전통적인 백인거주지역이 무너지면서 흑백간의 갈등이 심화된 것이 이번 사태의 숨겨진 원인쯤 된다. 문제는 백인에 대한 흑인들의 적대감이 점차 동양인에게 옮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평양 건너 퍼거슨 시의 상황은 미국생활을 경험한 나로서는 남의 일 같지 않다. 불탄 가게를 무대로 한국TV와 인터뷰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교포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의 외로움·고통 등을 실감한다. 초록이 야위어 가는 구월, 태평양 건너 들려오는 한 교포의 울음소리에 나는 오늘 밤 잠을 뒤척이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