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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신영 작가
'스타더스트(2007)'라는 판타지 영화가 있다. 인간 청년 '트리스탄(찰리 콕스 분)'이 마법의 땅 '스톰홀드'에 떨어진 별(클레어 데인즈 분)을 갖기 위해 금기의 담장을 넘어가 겪는 모험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성벽이 등장하는 유럽 민담의 기본 패턴을 잘 보여준다. 그 패턴은 이렇다. 옛날에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한 마을이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벽을 넘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성벽 너머에는 괴물과 마녀와 늑대들이 우글거려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한 소년이 벽을 넘어가 여러 가지 모험을 하고 성숙한 젊은이가 되어 마을로 돌아온다. 이런 이야기는 왜 생겼을까? 과거 유럽인들은 왜 벽 너머에는 자신들과 다른 존재들이 산다고, 그래서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했을까?

현재 유럽에 남아있는 고대 성벽 중에 가장 긴 성벽은 '하드리아누스 방벽'이다. 로마제국은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영국에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을, 독일에는 '게르마니아 방벽'을 건설했다. 122~130년 사이에 건설된 하드리아누스 방벽의 동쪽 끝은 뉴캐슬이고 서쪽 끝은 칼라일인데, 총길이 117㎞에 이른다. 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나누는 경계선과 거의 비슷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스코틀랜드 지역 원주민인 픽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 벽을 쌓았다. 용맹했던 픽트족은 이후 스코트족에 동화됐다. 이 스코트족의 이름에서 스코틀랜드가 유래했다.

방벽을 건설할 당시 로마인들은 침입자들인 자신들에게 당연히 저항하던 방벽 너머의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괴물과 같이 미개하고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벽을 건설했던 로마군인들이 철수한 후, 잉글랜드의 지배자가 앵글로 색슨족과 노르만족으로 바뀐 후에도, 벽 바깥에 사는 야만족에 대한 인식은 그대로 남아 후세에 전해졌다. 오랜 세월을 두고 담장 밖 세상에 사는 위험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생겨나 전승됐다.

위험한 존재는 벽을 세워 문명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편견이 보이는 영화가 또 있다. 닐 마샬 감독의 '둠스데이 : 지구 최후의 날(2008)'이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치명적 바이러스가 발생하자 영국 정부는 철벽을 세워 스코틀랜드 지역을 잉글랜드로부터 완전히 격리한다. 장벽에 접근하는 스코틀랜드인들은 무조건 사살해 버린다. 이 영화는 좀 황당한 SF액션영화이긴 하지만, 도입부의 이러한 설정에서 하드리아누스 장벽의 영향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지난 18일, 영국연방에서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개표 결과 55%로 독립 추진안이 부결됐다. 스코틀랜드는 무력이 아니라 왕실간 결합의 결과로 1707년에 잉글랜드와 합병됐지만 잉글랜드에 대해 역사적으로 오래된 민족 감정을 갖고 있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 곳곳에서.

/박신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