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수한지에 대해
설명 못하는 학생을 만든건
다름 아닌 우리 교육이다
지금부터라도 소중한
문화 가치 제대로 가르쳐야
흔히 시월(十月)을 '상달'이라 하지만, 원래는 음력 시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음력 시월은 한 해 농사가 마무리돼 햇곡식과 햇과일로 하늘과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는 때로, 일년 중 가장 풍요롭고 아름다운 계절이다. 개천절, 국군의 날, 한글날 등 기념일이 시월에 몰려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예전에는 국군의 날(10월 1일)과 유엔창설일(10월 24일)도 공휴일로 지정돼 10월에는 유난히 쉬는 날이 많았다. 언제부턴가 개천절만 국정공휴일로 지정돼 쉬는 날이 부쩍 줄어들었는데, 작년부터 한글날이 공휴일로 부활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다. 또한 한글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시기가 분명한 글자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의 유명 언어학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것으로,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대표적인 한글예찬론자다. 우리나라가 IT분야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한글 때문이라는 것을 알 만한 이는 다 안다. 손 쉬운 예로, 스마트폰 기종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을 수 있지만, '학교'란 단어를 입력하는데 한글은 일곱 번만 키를 누르면 되지만 영어의 경우 똑같은 자판에서 배나 걸린다. 한자는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 아예 경쟁이 안 된다.
최근 각 대학의 대학원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전공' 지원자가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국력이 신장됐다는 것일 텐데, 이 현상을 무작정 좋아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해 요즘 우리말의 오염과 왜곡은 거의 재난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생들은 한글이 왜 우수한지에 대해 거의 무지하며, 중고등학생들이 만들어 사용하는 유행어는 한글의 체계와 문법을 교란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자(漢字)를 영어나 스페인어보다 어려운 외국어로 생각해 우리말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나와 같은 국어선생들의 무관심과 무책임이 큰 몫을 차지해 부끄럽지만, 지금부터라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
잘 알다시피 한자는 중국의 창힐(蒼詰)이란 이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자는 수천년 동안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동남아 국가의 공용문자로 사용돼 왔기 때문에 '중국 글자'라고만 말할 수 없다. 이를테면, '大'란 글자를 중국에서는 '따', 일본은 '다이(오오)', 한국은 '대'로 각각 달리 읽으며, 단어의 조합과 의미는 전혀 다른 예가 더 많다. 이것은 알파벳 'ABC'를 '에이 비 씨'(영국·미국), '아 베 체'(독일), '아 베 쎄'(프랑스)로 각각 달리 발음하는 것과 같다. 서구 사람들이 알파벳을 특정 국가의 문자라고 부르지 않듯, 한자를 중국 글자라고 한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한자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글자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한자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일부 완맹한 한글전용주의자들의 편벽한 생각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한자를 안 배워도 일상생활과 학문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 모르겠거니와, 우리의 경우 한자를 모르면 의사소통에 커다란 장애가 발생하므로 한자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어느 언론인의 주장처럼, 한자를 모르는 것은 문맹과 다를 바 없다. 우리 이름은 대개 한자로 돼 있는데, 정작 제 이름을 한글로는 쓰면서 한자로 못 쓴다는 것은 얼마나 큰 모순인가. 한자를 배우지 않아 생겨나는 오해와 실수는 예거할 수 없을 정도로 잦고 많다. 요즘은 TV뉴스에서도 잘못 표기된 자막이 나오기 일쑤고, 일부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의 말실수는 이야기 거리도 안 될 정도로 흔하다. 우리가 우리말을 제대로 쓰지 않고 마구 왜곡하다 보니 외국인들은 그것을 정확한 한국어로 착각해 따라한다. 그 대표적인 말 가운데 하나가 "완전 좋아"다. 예전에는 유아들이나 했을 이 말을 지금은 한국인 대다수가 사용하며, 심지어는 교양프로그램의 진행자도 깔깔거리며 "완전 좋아요!"를 외친다.
예전에는 고등학교에서 한글 창제원리를 가르쳤다.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은 알면서 왜 우수한지 설명하지 못하는 학생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 교육이다. 지금부터라도 소중한 우리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장영우 동국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