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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생활비나 자영업 사업자금 등으로 쓰는 규모가 3년 새 60% 가까이 급증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주택자금대출 창구. /연합뉴스 |
실질소득의 정체로 삶이 팍팍해진 중산층과 서민들이 은행 빚에 의존한 탓이다. 더구나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와 금리 인하로 이 같은 '생계형 주택대출'은 한층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기업 등 4개 주요 은행의 올해 1~7월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 51조8천억원 가운데 27조9천억원(53.8%)은 실제로 주택 구입에 쓰이지 않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 구입 목적이 아닌 '기타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은 주로 생활비나 자영업자의 사업자금, 또는 마이너스 대출 등 다른 대출금을 갚는 데 쓰인다"고 설명했다.
비(非) 주택 구입용 주택담보대출의 비중은 2011년 43.2%에서 2012년 50.6%, 2013년 50.9%로 꾸준히 높아졌다. 올해 1~7월 비중이 53.8%이므로 3년 새 10%포인트 넘게 높아졌다.
'내집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는 것이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원래 취지이지만, 실제로는 내집 마련보다 다른 생계유지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은 셈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생계형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는 더 가파르다.
생계형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하나은행 제외)은 2011년에 29조7천억원이었으나 올해 1~7월에는 27조5천억원에 달했다. 연간으로 따지면 47조1천억원이나 된다. 3년 만에 17조5천억원(약 59%)이 불어난 것이다.
생계형 주택담보대출은 주로 수입이 적은 저소득층이나 퇴직한 자영업자가 쓴다. 그만큼 대출자 입장에서는 부채 부담이, 은행 측에는 부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
실제로 주택담보대출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의 경우 은퇴 계층이 몰린 50세 이상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올해 6월 말 38조원으로, 2011년 말 32조5천억원에서 5조5천억원(17.0%) 늘었다.
같은 기간에 농협은행에서도 50세이상 중·고령층의 주택대출이 12조7천억원에서 17조4천억원으로 4조7천억원(37.0%) 급증했다. 전체 주택대출 대비 비중도 36.8%에서 40.0%로 커졌다.
또 하나은행은 11조9천억원에서 14조원으로 2조1천억원(18.2%) 늘었고, 신한은행도 17조8천억원에서 20조1천억원으로 2조3천억원(13.1%) 증가했다.
50세를 넘으면 그동안 쌓인 주택담보대출을 대부분 갚고 털어내는 게 정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년층 주택담보대출의 상당 부분은 생활비나 생계형 사업자금에 쓰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더구나 정부는 주택경기 부양을 위해 지난 8월부터 담보인정비율(LTV)을 70%로, 총부채상환비율(DTI)을 60%로 상향 조정했다. LTV·DTI 규제 완화는 주택담보대출 한도 증가로 이어져 대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은행도 이에 보조를 맞춰 같은 달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연 2.25%로 0.25%포인트 내리면서 대출자의 이자 부담을 줄여줬다.
이는 정부의 LTV·DTI 완화와 한은의 금리 인하로 생계형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한층 가팔라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 LTV·DTI 규제완화 이후 지점 창구에 대출 가능 금액을 물어보는 고객이 많아졌다"며 "주택대출자의 절반 이상이 실제 주택 구입보다는 생활비 등으로 쓰려고 대출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의도와 달리 생계형 대출만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