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바다는 하나다. 그러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은 아니다. 강봉룡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장(사학과 교수·사진)은 지난달 30일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에서 '해양인식의 확대와 해양사'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강 원장은 고대 지중해의 시대부터 현대 태평양 시대에 이르기까지 바다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고대 해양사의 중심은 유럽과 아프리카, 서아시아로 둘러싸여 있는 남유럽의 바다 '지중해'다. 남유럽 여러 세력들은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쟁투를 벌였다.

기원전 13세기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그랬고, 아테네와 페르시아가 맞붙은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479)도 지중해를 배경으로 일어난 전쟁이었다. 이 밖에 펠레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 포에니전쟁(기원전 3세기)이 지중해의 주요 패권 전쟁이다.

이 같은 전쟁을 거치면서 지중해 패권은 그리스에서 로마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로마는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라고 선언했다.

중세 시대에 접어들어 바다는 '海(바다해·Sea)'에서 '洋(큰바다양·Ocean)'으로 바뀌었다. 7세기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개창한 이후 8세기 북아프리카 연안을 따라 이베리아반도까지 진출했고, 아라비아해를 통해 인도양으로 넘어갔다. 

이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이 이슬람국가로 자리잡은 계기가 됐다.

근세·근대는 '대항해 시대'라고 불린다. 동방(인도)에 대한 동경으로 에스파니아 이사벨 여왕은 해양탐험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포르투갈은 엔리케왕자의 후원으로 아프리카 연안항로를 개척했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바하마제도, 쿠바, 히스파니올라(아이티) 제도에 도달했고, 피렌체 출신의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1497년 콜롬비아, 1499년 브라질에 도착하는 등 대서양 항로가 개척됐다.

1488년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했고, 바스코 다 가마는 1497년 포르투갈 리스본 근교 벨렝에서 출발,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양을 횡단해 인도 남서부의 도시 캘리컷에 도착했다. 포르투갈 태생의 스페인 탐험가 마젤란은 1520년 태평양에 도달해 필리핀 세부섬까지 진출했다.

17세기 에스파니아로부터 독립한 네덜란드는 해운업으로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1651년 '어떤 나라도 자신의 국가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건을 영국에 반입할 수 없다'는 영국의 항해조령으로 네덜란드 해운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어 영국의 시대가 찾아왔다. 영국의 항해가 제임스 쿡은 1768년 태평양, 뉴질랜드, 호주, 남극양, 북서항로 항해를 통해 '세계의 바다는 하나'임을 입증했다. 18세기 중엽 영국의 산업혁명은 영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세기는 미국의 시대다. 1차 세계대전(1914~18)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미국은 2차 세계대전(1939~45)을 통해 태평양을 접수했다. 미국·소련의 이념 대립과 일본의 급성장, 소련의 해체는 21세기를 대서양의 시대에서 태평양의 시대로 바꾸었다.

중국의 급성장과 유럽 경제의 위기는 앞으로 해양사의 또 다른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다음 4강은 오는 14일 오후 2시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인하대 한성우 교수가 '언어 특징으로 본 인천사람들'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