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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간 남짓' 가장 짧은 등산 코스
장터목산장 인근 풍경 '단풍 일품'
정상서 본 한국 최대 산악군 감탄
■ 빠르고 빨라야 갈 수 있는 지리산
컴퓨터와 시계를 번갈아 보며 초재기를 한다. 예약이 개시되는 순간을 시시각각 기다리다 예약 가능한 순간을 포착해 마우스를 연신 눌러보지만 순식간에 예약 만료가 뜬다. 아… 깊은 탄식이 절로 흘러나오는 순간이다.
누군가에겐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순간이, 누군가에겐 또 다시 다음으로 기회를 미뤄야하는 대피소의 예약에 등산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피가 마른다.
그렇게 지리산은 더욱 먼 곳에 떠있는 외로운 섬처럼 존재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텐트와 석유코펠을 넣고 담요를 두른 호기로운 배낭 대신 괴나리 봇짐만한 배낭을 멘 등산객들로 만원사례를 이루는 대피소에선 비박조차 불가하다 하여 한밤중에도 하산을 종용한다.
당연히 고성이 오갈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연출하다 못해 욕지거리와 때론 몸싸움도 불사하니 지리산을 맘 편하게 가려거든 빠르고 빨라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친 등산객들을 위해 맘 편히 당일 산행으로 천왕봉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고자 한다.
■ 당일치기로 천왕봉에 오르기
동서울에서 출발해 백무동으로 향하는 고속버스가 하루에 8편이 운행되고 있다.
스케줄은 일단 이 것에 맞추거나 개인 차량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으니 좀 더 편하고자 한다면 지역 산악회의 일정표를 보고 결정할 일이다. 동서울에서 자정에 출발한 고속버스가 백무동에 도착하는 시각은 새벽 3시50분을 전후로 한다.
수도권에서 천왕봉을 당일에 올랐다가 하산하기엔 백무동 코스가 가장 단거리이기에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못하다.
일정상 또는 대피소 예약을 하지 못한 경우 천왕봉으로 지리산을 만족케 할 코스라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을 것이나 부산, 경남쪽 등산객들은 중산리로 올라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기도 한다.
일단 장터목 대피소까지 6㎞의 거리로 약 3시간30분이 소요되며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1.7㎞의 거리로 약 1시간20분 정도가 소요된다.
왕복코스로 할 경우 휴식과 식사시간을 포함해 약 10시간 가량이 소요된다고 보면 맞는다. 해발 500m의 출발지에서 약 1천400m를 올라야 하니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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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산행준비를 하는 동안 관광버스 한 대가 멈추더니 마치 준비를 마친 선수들이 출발하듯 쏜살같은 속도로 전진한다. 그리곤 지체없이 숲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준비운동을 하고 가란 소리를 외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쓸데 없는 오지랖으로 느껴졌다.
10시간 가까이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과정에서 단 5분도 허락되지 못하는 마음가짐에 대피소 예약을 하기 위해 눌러대던 마우스 위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1시간 여를 올라 겨울철에는 얼어 붙는 참샘에 이르러 한모금의 약수로 목을 축이고 빈 물병을 채운 후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계곡의 물소리가 끝나가는 곳이어서 능선으로 올라붙는 가파른 길만 남았다고 일행에게 겁을 주는 곳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계단과 거친 오르막을 오르며 거친 숨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숲의 아침을 깨운다. 앞서 출발한 등산객들이 하나둘 뒤로 처져 나가기 시작하고 이윽고 능선에 이르기 전에 그들 모두가 마른 기침을 해대며 멈춰서서 힘들어 한다.
능선길에 올라서면 비교적 수월한 산행을 할 수 있는 구간에 접어든 것이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어느새 1천600여m를 훌쩍 넘긴 높이에 다다른다. 장터목 산장이 멀지 않았기에 비로소 주변의 풍경에 눈을 돌리고 이른 단풍을 즐기기에 좋은 구간다.
증축과 개보수를 반복하고 있는 장터목산장은 여전히 분주한 곳이다. 천왕봉을 눈앞에 두고 쉬어가는 곳이다 보니 제법 많은 수의 등산객들이 배낭을 둔 채 정상을 다녀오기도 하며 식사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인근 지역에서 단체로 온 어린 학생들의 재잘거림과 짐을 운반하는 헬기로 인해 소란스럽기에 서둘러 천왕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하는 곳 천왕봉
지리산(智異山)은 방장산(方丈山),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불렸으며 높이로는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이며 3개도 5개군에 걸쳐 있으면서 1967년 12월에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곳이다. 설악산보다 약 1.2배의 규모이다 보니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라는 말에 실감을 하게 된다.
한편 지리10경(智異十景)으로 노고단의 구름바다(老姑雲海), 불일폭포, 반야봉의 해넘이(般若落照), 피아골의 단풍(稷田丹楓), 벽소령의 달(碧沼明月), 세석의 철쭉, 연하천의 선경(煙霞仙境), 섬진강의 맑은 흐름(蟾津淸流), 칠선계곡, 천왕봉 해돋이(天王日出)를 꼽고 있는데 이처럼 다양한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간직하며 인간에게 그 모든 것을 선사해 주는 곳이 지리산이다.
중산리와 치밭목 방향, 장터목에서 올라온 이들이 모여든 천왕봉에서의 조망은 일망무제(一望無際)로 거칠 게 없다.
한국 최대의 산악군을 형성하고 있는 웅장한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맑고 선한 기운으로 충만한 천왕봉에 보다 많은 이들이 올라와 좋은 추억을 담아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사진/송수복 객원기자
■ 산행 Tip
지리산 천왕봉을 당일에 오르기 위해선 우선 새벽 산행을 해야하고 산행시간이 예상보다 더 지체될 수 있는 돌발적 요인이 생길 수 있으므로 산행 경력자와 동행하길 권한다. 준비물로는 랜턴과 무릎보호대, 등산스틱, 우의, 간식을 필수로 지참하는 것이 좋다.
체력 소모가 큰 만큼 절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꾸준하게 오르는 것을 권한다. 초반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 특히 중요하며 앞서가는 사람을 의식해서 속도를 내지 않도록 한다.
천왕봉은 장터목 산장에서 약 1.7㎞의 거리로 1시간20분 가량이 소요되며 일출시각을 맞추기 위해선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 서두르는 것이 좋다. 보온, 방풍재킷은 필수로 지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