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중 교수·교사·강사들
은어·비속어 금지와
반말 안하기부터 시작돼야
욕설 난무하는 사회 책임은
청소년 아닌 어른에게 있기에
핵노잼(매우 재미없음), 존나/열라/졸라(매우), 쩐다(질리도록 잘한다), 패드립(가족욕함), 졸못(매우 못생김), 엄창(엄마 창녀) 등등 초중고등 학생들이 거의 매일 사용한다는 이런 표현들을 독자 여러분은 얼마나 아는지 궁금하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교사들의 61%가 매일 학생들의 은어·비속어를 들으며, 31.6%가 학생들의 비속어·은어를 절반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답했다. 언론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인터넷·방송의 무분별한 막말과 신조어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유가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 안타깝게도 의미있는 해결책을 제시한 기사는 보지 못했다. 다음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필자의 의견이다.
우선 정부기관과 교사·국어학자들을 중심으로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은어·비속어·욕설의 의미와 근원을 설명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표준어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보급시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핵노잼은 핵이라는 말이 핵폭탄급 즉, '매우'라는 뜻이고 노는 'NO', 잼은 '재미'를 뜻한다. 따라서 핵노잼은 '매우 재미없다'는 뜻이다. 패드립은 패가 'family'를 의미하고 드립은 얼간이 'drippy'라는 단어의 축약형이다. 한마디로 '너희 가족은 얼간이'라는 뜻이다. '엄창'은 너희 엄마 창녀의 약자고, '쩐다'는 '질리게 잘한다'는 뜻으로 질+잘의 조합으로 '절'이 되고 이 말보다 더 과격하게 사용하려고 '쩔'이 된 것이다. 이처럼 각종 은어·비속어·욕설은 조어 과정의 맥락과 뜻이 있다.
과연 청소년들이 이러한 의미와 조어 과정을 알고 사용할까? 검색을 통해 은어와 비속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대신하는 대체 표준어를 교육시킬 수 있어야 학생들은 더 이상 이러한 표현들을 스스로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국어학자들과 교사들은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은어와 속어의 근원적 의미를 분명히 해 이 표현들의 비문법성과 조악한 의미를 청소년들에게 분명히 깨우쳐줘야 한다. 또한 교육부를 포함한 정부기관은 잘못된 은어와 속어의 사용으로 인한 문제점을 학생 스스로 깨달아 자제하는 학습도구와 교육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
다음으로, 은어와 비속어가 욕설이 된다는 사실을 학부모와 교사들이 청소년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흔히 사용하는 욕설중 숫자 18과 연관된 표현의 근원은 여자의 성기를 뜻하는 순 한글 은어와 '하다'라는 동사가 합쳐져 만들어진 비속어였다. 이 은어·비속어는 원래 '성교하다'는 뜻이었지만 오늘날 누구도 이 말을 그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아주 거친 욕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개××라는 식의 표현에서 '개'는 'Dog'의 의미가 아니라 허름하고 빈약하며 저속한 것이라는 속어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개드립·개꼴깝 등의 접두사에 사용되는 '개'는 허름하고 빈약하며 저속한 것의 수준을 넘어 그 정도가 심한 것을 의미한다. 청소년들이 남용하는 은어와 비속어가 집단간 친숙함의 상징이 아니라 욕설의 전 단계임을 깨닫게 된다면 청소년들은 은어와 비속어 표현을 자제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교수·교사·강사 등은 최소한 강의중에는 존댓말을 꼭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많은 교사와 강사 심지어 교수 중에도 강의중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학생들을 '애들'이라 부르고 강의중 '~했지?' '~잖아' '알았지?' 등의 표현이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사람은 은어·비속어·욕설이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학생들을 교육시킬 수 없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말이 친숙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배우는 사람은 은어와 비속어가 친밀도를 더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언어환경은 욕설이 난무하는 상황을 정감어리다고 우기는 사회가 될 것이다.
얼마 전 한국교총은 교사들만으로는 학생들에게 바른 언어습관을 심어주기 역부족이라며 앞으로 학생 언어습관 개선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그 시작은 가르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업중 은어와 비속어 사용금지와 반말하지 않기 캠페인이 돼야 할 것이다. 욕설이 난무하는 사회에 대한 책임은 배우는 청소년이 아닌 가르치는 어른에게 있음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