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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수 편집국장 |
요행심리·무신경의 안이함과
성과제일주의 사고방식
결국 대형참사로 이어져
사고 예방위해선
가장 기본적인것 부터 고쳐야
도대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사고를 당한 게 엊그젠데 그새 그때의 교훈을 잊었는지 또다시 판교의 공연장에서 시민들이 죽고 다치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엊그제에는 수원의 대형마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회사측의 안일한 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매캐한 연기가 매장을 뒤덮었는데도 회사측은 별일 아니라고 친절하게 안내방송까지 했다. 그리고 10분 뒤 위험하니 대피하라고 방송했다. 안심했던 쇼핑객들은 우왕좌왕했고 한꺼번에 매장을 빠져나오느라 아수라장이 됐다. 자칫했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게 불과 20여년 전이다. 당시의 신문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이럴까 싶을 정도로 지금과 판박이다.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법령과 제도를 바꾸는 등 국가를 새롭게 정비하고 안전시스템을 구축하며 사고 책임자들을 엄단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뒤를 이었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그래서 달라졌을까. 세월호 참사를 되짚어 보고 판교 사고를 뜯어보면서 느끼는 건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왜 우리는 달라지지 않을까.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식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하고 위험한 일도 태연하게 해치우는 안전 불감증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게 괜찮다는 성과제일주의적 사고방식도 바꿔야 한다.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속담은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도 그렇다. 이준석 선장이나 선원들은 사건이 그렇게 커질 줄 몰랐을 게다.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각 뒤엔 내가 튄다고 설마 큰일이야 나겠어 하는 요행심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구조를 위해 출동한 해경도 마찬가지다. 어 어 어 하는 동안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게 다 설마에서 시작된 것이다. 판교도 마찬가지다. 환풍구는 지상과 지하의 공기가 교류하는 통로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설마 하는 안이한 태도가 대형참사로 이어졌다. 설마 하는 요행심리와 나는 괜찮겠지 하는 안이함,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고쳐야 할 부분이다.
성과제일주의 사고방식도 이제는 고칠 때가 됐다. 1960년대의 보릿고개를 지나 70년대 고도성장기를 지나면서 원인과 과정을 따지기보다는 효율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DNA처럼 체질화됐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사고방식 말이다. 그런 사고방식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과정과 절차는 무시되고 결과만 중요하게 여기는 게 당연시됐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도 무시되고 있다. 대로에서 무단횡단이 위험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공사현장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차단막을 만드는 것은 공사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장치다. 오토바이를 몰면 안전모를 반드시 써야 하고 차를 운전할 때는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 모두들 상식에 속하는 것들이고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그걸 지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귀찮게 생각한다.
사고는 여러 원인이 겹쳐 일어난다. 처음엔 그저 물만 조금 새는 듯하지만 방치하면 결국은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말이다. 대형사고만 발생하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단어는 이제 식상하다. 내가 문제인데 모두의 문제인 것처럼 얼버무리는 건 책임의식을 무디게 만드는 얼렁뚱땅에 다름없다. 개개인의 시민의식이 달라져야 한다. 나부터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게 사고를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생각이 달라져야 행동이 바뀐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건 바보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가 그런 바보사회는 아니라고 굳게 믿고 싶다.
/박현수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