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로 저축의 날을 맞지만 가계저축률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저조한 저축률에는 실질소득의 정체와 가계대출 급증 등의 요인이 작용했지만, 저축 권장을 외면하는 은행들과 정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가계저축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저축률 OECD 최저 수준…은행 '저축의날' 특판도 없어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순저축률(이하 가계저축률)은 4.5%로 1년 전 3.4%보다 1.1%포인트 높아졌다.
일시적으로 높아지긴 했지만, 가계저축률은 2001년 이후 5%를 넘은 경우가 2004년(8.4%)과 2005년(6.5%) 두 차례뿐일 정도로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24.7%로 정점을 찍었던 가계저축률은 1990년대 평균 16.1%를 기록하며 하락세를 이어가 2001년(4.8%)부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를 밑돌았다.
2011년 기준 한국의 가계저축률은 3.4%로 OECD 평균인 5.3%에 훨씬 못 미친다. 이는 9~13%에 달하는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주요 국가는 물론 저축 안 하기로 유명한 미국(4.2%)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정부와 은행도 저축 권장에는 관심이 없다.
수익구조가 다각화한 외국 은행들과 달리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인 예대금리를 통해 수익의 대부분을 유지하는 국내 은행들은 저금리가 본격화한 후 예·적금 유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국민, 신한, 외환, SC은행 등 대부분의 은행이 최근 예·적금에 붙는 우대금리를 대폭 축소해 거의 유명무실한 수준으로 만들어버렸다.
지난해만 해도 저축의 날에 최고 연 3.4%의 우대금리를 주는 특판 예·적금을 출시하는 은행들이 여럿 있었으나, 올해는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저축 외면에는 정부의 무관심과 정책 부재도 한몫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옛날에는 저축의 날에 특판 상품을 출시할 것을 금융당국이 종용하기도 했으나 올해는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며 "당국의 관심은 온통 기술금융과 부동산경기 활성화에 쏠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에서 세금우대종합저축에 세제 혜택을 없애버렸다.
이 상품은 1천만원에 대한 이자소득세를 15.4%에서 9.5%로 낮춰주는데다 20세가 넘으면 누구나 1천만원 한도로 가입할 수 있어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세제 혜택 폐지로 피해를 보는 가입자는 7개 시중은행에만 764만명에 달한다.
이는 최근 하원에서 '저축증진법'을 통과시키며 노후 대비와 생활 안정을 위한 가계의 저축 장려에 여념이 없는 미국 정부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 소득정체로 저축 줄어…'하우스 푸어' 늘어난 것도 요인
가계저축률 하락의 구조적인 요인으로는 가처분소득 증가율 정체, 인구고령화에 따른 피부양인구 증가, 부동산가격 상승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확대, 저금리 기조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가처분소득 증가율의 둔화로 가계가 저축할 수 있는 여력이 감소한 게 주 요인으로 꼽힌다. 즉 가계가 저축을 안 한게 아니라 못했다는 뜻이다.
연평균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1990년대 10%대를 상회하는 증가율을 보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5% 전후로 하락했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소득은 정체 상태에 빠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리 하락으로 저축에 대한 유인이 줄어든 것도 큰 요인이다.
실질금리는 1990년대 연 10%대에 육박했지만 2011년 0.41%, 2012년 1.57%까지 하락했다. 정기예금 금리가 연 2%대 초반까지 떨어진 올해는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까지 하락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계부채 급증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나면서 저축할 여력이 감소한 것도 저축률 감소의 주요 요인이다.
2002년 465조원이었던 가계부채는 이미 1천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저축이 문제가 아니라 과도한 부채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인 셈이다.
1990년대 이전에는 대출금리가 워낙 높고 대출 자체가 쉽지 않았던 탓에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전세금과 주택자금을 마련해야만 했다. 이는 가계저축률 상승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저축만으로 오르는 주택가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고, 사람들은 대출을 통해 주택을 미리 구매해야만 했다. 가계대출 증가는 결국 가계저축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 "가계저축률 1%p 하락하면 성장률 0.2%p 내려"
저축률 하락의 영향은 경제학자들 사이에 다소 이견이 있지만, 내수와 투자활성화를 위해 저축률을 점진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이지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택담보대출로 주택을 선구매하고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것과 돈을 미리 모은 뒤 주택을 구매하는 것 사이에 경제적 실질에서 차이가 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가계대출이 부동산 등 자산구매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단순한 생활자금을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면, 단기적으로는 소비지출을 늘리는데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거시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의 송승주 연구위원은 '개인저축률과 거시경제변수간 관계분석' 보고서에서 "개인순저축이 증대될수록 장기적으로 소비도 늘어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 소비여력 증대를 위해 국내 저축 특히 가계저축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김천구 선임연구원은 '가계저축률 급락과 파급 영향' 보고서에서 "가계저축률이 1%포인트 하락할 때 투자는 0.25%포인트, 경제성장률은 0.19%포인트 각각 하락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기업투자의 경우 가계저축률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며, 이런 상관관계는 2000년대 들어 더욱 공고해졌다고 그는 분석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가계저축률 하락 추세가 지속되면 투자와 경제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노후 소득보장 문제도 심각해질 수 있다"며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계의 소득기반을 확충하고 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저조한 저축률에는 실질소득의 정체와 가계대출 급증 등의 요인이 작용했지만, 저축 권장을 외면하는 은행들과 정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가계저축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저축률 OECD 최저 수준…은행 '저축의날' 특판도 없어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순저축률(이하 가계저축률)은 4.5%로 1년 전 3.4%보다 1.1%포인트 높아졌다.
일시적으로 높아지긴 했지만, 가계저축률은 2001년 이후 5%를 넘은 경우가 2004년(8.4%)과 2005년(6.5%) 두 차례뿐일 정도로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24.7%로 정점을 찍었던 가계저축률은 1990년대 평균 16.1%를 기록하며 하락세를 이어가 2001년(4.8%)부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를 밑돌았다.
2011년 기준 한국의 가계저축률은 3.4%로 OECD 평균인 5.3%에 훨씬 못 미친다. 이는 9~13%에 달하는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주요 국가는 물론 저축 안 하기로 유명한 미국(4.2%)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정부와 은행도 저축 권장에는 관심이 없다.
수익구조가 다각화한 외국 은행들과 달리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인 예대금리를 통해 수익의 대부분을 유지하는 국내 은행들은 저금리가 본격화한 후 예·적금 유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
국민, 신한, 외환, SC은행 등 대부분의 은행이 최근 예·적금에 붙는 우대금리를 대폭 축소해 거의 유명무실한 수준으로 만들어버렸다.
지난해만 해도 저축의 날에 최고 연 3.4%의 우대금리를 주는 특판 예·적금을 출시하는 은행들이 여럿 있었으나, 올해는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저축 외면에는 정부의 무관심과 정책 부재도 한몫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옛날에는 저축의 날에 특판 상품을 출시할 것을 금융당국이 종용하기도 했으나 올해는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며 "당국의 관심은 온통 기술금융과 부동산경기 활성화에 쏠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에서 세금우대종합저축에 세제 혜택을 없애버렸다.
이 상품은 1천만원에 대한 이자소득세를 15.4%에서 9.5%로 낮춰주는데다 20세가 넘으면 누구나 1천만원 한도로 가입할 수 있어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세제 혜택 폐지로 피해를 보는 가입자는 7개 시중은행에만 764만명에 달한다.
이는 최근 하원에서 '저축증진법'을 통과시키며 노후 대비와 생활 안정을 위한 가계의 저축 장려에 여념이 없는 미국 정부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 소득정체로 저축 줄어…'하우스 푸어' 늘어난 것도 요인
가계저축률 하락의 구조적인 요인으로는 가처분소득 증가율 정체, 인구고령화에 따른 피부양인구 증가, 부동산가격 상승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확대, 저금리 기조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가처분소득 증가율의 둔화로 가계가 저축할 수 있는 여력이 감소한 게 주 요인으로 꼽힌다. 즉 가계가 저축을 안 한게 아니라 못했다는 뜻이다.
연평균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1990년대 10%대를 상회하는 증가율을 보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5% 전후로 하락했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실질소득은 정체 상태에 빠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리 하락으로 저축에 대한 유인이 줄어든 것도 큰 요인이다.
실질금리는 1990년대 연 10%대에 육박했지만 2011년 0.41%, 2012년 1.57%까지 하락했다. 정기예금 금리가 연 2%대 초반까지 떨어진 올해는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까지 하락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계부채 급증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나면서 저축할 여력이 감소한 것도 저축률 감소의 주요 요인이다.
2002년 465조원이었던 가계부채는 이미 1천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저축이 문제가 아니라 과도한 부채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인 셈이다.
1990년대 이전에는 대출금리가 워낙 높고 대출 자체가 쉽지 않았던 탓에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전세금과 주택자금을 마련해야만 했다. 이는 가계저축률 상승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저축만으로 오르는 주택가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고, 사람들은 대출을 통해 주택을 미리 구매해야만 했다. 가계대출 증가는 결국 가계저축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 "가계저축률 1%p 하락하면 성장률 0.2%p 내려"
저축률 하락의 영향은 경제학자들 사이에 다소 이견이 있지만, 내수와 투자활성화를 위해 저축률을 점진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이지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택담보대출로 주택을 선구매하고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것과 돈을 미리 모은 뒤 주택을 구매하는 것 사이에 경제적 실질에서 차이가 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가계대출이 부동산 등 자산구매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단순한 생활자금을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면, 단기적으로는 소비지출을 늘리는데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거시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의 송승주 연구위원은 '개인저축률과 거시경제변수간 관계분석' 보고서에서 "개인순저축이 증대될수록 장기적으로 소비도 늘어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 소비여력 증대를 위해 국내 저축 특히 가계저축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김천구 선임연구원은 '가계저축률 급락과 파급 영향' 보고서에서 "가계저축률이 1%포인트 하락할 때 투자는 0.25%포인트, 경제성장률은 0.19%포인트 각각 하락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기업투자의 경우 가계저축률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며, 이런 상관관계는 2000년대 들어 더욱 공고해졌다고 그는 분석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가계저축률 하락 추세가 지속되면 투자와 경제성장률에 악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노후 소득보장 문제도 심각해질 수 있다"며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계의 소득기반을 확충하고 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