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금서' 몰래 읽기도
노동의 새벽·임꺽정·부활…
"시대·사회 인식에 큰영향"


최근 인천지역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 현실이 경인일보가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와 각종 통계 분석 결과로 드러났다. 특히 '정신을 살찌우게 한다'는 인문학 서적은 대학 교재나 어학 서적 등에 밀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많은 문인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단 한 권의 책이 삶에 옳은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인 1980년대 대학을 다닌 문인들은 몰래 책을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금서'로 지정한 책들이 당시 시대와 사회를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인천을 대표하는 최고의 문인들이 젊은 시절 빠져든 책은 어떤 것일까.

강화도에 머무는 함민복 시인은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1984·풀빛)'을 20대 시절을 함께 한 책으로 꼽았다. 함민복 시인은 "26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되고 나서 박노해의 노동시를 처음 접하고 보지 못했던 현실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먹염바다(2005)'를 쓴 이세기 시인은 "1986년께 인천에서 유일하게 인문사회과학서적을 팔던 광야서점에서 일하면서 홍명희의 '임꺽정(1985·사계절출판사)'을 다락방에 숨어서 읽던 기억이 난다"며 "임꺽정을 읽으며 우리나라 말의 아름다움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홍명희의 '임꺽정'은 당시 금서로 지정됐지만, 하루에 9부씩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분단소설 '황해(1990)'를 쓴 이원규 작가는 대학에서 읽은 톨스토이(Lev Tolstoy)의 '부활'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든 책이라고 밝혔다. 이원규 작가는 "톨스토이의 치열한 작가 정신과 그의 작품 속에 담긴 휴머니즘이 작가를 꿈꾸던 20대의 나에게 화두를 던졌다"고 했다.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의 김중미 작가는 1980년대 초반 출간된 '한국근대사상가 선집(전 6권·한길사)'을 20대에 가장 영향을 준 책으로 꼽았다. 이 책은 한용운, 김구, 신채호 등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전기이다.

김중미 작가는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신념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등에 대한 깨달음을 스스로 얻었다"고 말했다.

이현식 한국근대문학관 관장(문학평론가)은 1984년 대학에 입학해 처음 읽은 책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문학과지성사)'이라고 했다.

이현식 관장은 "소설에서 비치는 인천의 모습, 난장이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 등을 통해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을 준 책"이라고 소개했다.

/박경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