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때부터 활발 교류 불구
중요성 간과 해양활동 금지
日강제개항·식민지배 초래
동아시아의 역사를 육지 위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각 지역간에 일어났던 교류는 거의 해양을 통해 이뤄졌다.
윤명철 동국대 교수(해양문화연구소장)는 지난 11일 열린 인천시민 인문학강좌에서 '한민족의 해양활동과 해륙국가론'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윤 교수는 "한·중·일 관계에서 해양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특히 3지역 사이 이루어진 사람들의 이동과 물자의 교류, 온갖 갈등과 환희들은 해양이 아니면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동아시아는 선사시대부터 해양문화가 발달했다. 부산 근처나 울산, 대마도 등에서는 이미 6천~7천년 전 부터 한·일간 교섭 흔적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발견됐다. 고조선은 황해북부 해안을 끼고 발달했는데, 특히 요동반도와 서한만, 대동강 하구지역을 중심으로 해양문화가 발달했다.
삼국시대 고구려는 초기에 만주지역 송화강, 압록강 등 큰 강을 이용한 내륙수군 활동이 있었으며, 이후 황해를 무대로 중국의 남북조 국가들과 활발한 교섭을 했다.
백제는 해양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을 장악하면서 경기지방을 배후지로 삼고 바다로 진출했다. 서해남부지역도 완전히 장악해 제주도를 영향권 아래에 넣었으며, 일본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일본에서 고대국가가 성립하고, 불교 등 문화가 발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신라는 한반도 동남부에 고립돼 해양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경주를 해항도시로 삼고, 포항·감포·울산을 외항으로 삼으면서 해양활동을 전개했다.
고려는 북방의 요나라를 피해 송나라와 바다로 교역했다.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는 강화도 등에서 바다를 근거지로 항전했다. 삼별초정부는 진도, 제주도 등에 세운 일종의 해양왕국으로서 4년간 고려정부와 몽골을 대상으로 항쟁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해양문화는 천시되고 수군활동도 미미해졌으며 민간인의 대외해양활동을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바다를 막고 중국과의 교섭만을 추진했다. 그 결과 중국의 주변부로 전락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해양의 중요성과 역할이 거론됐다. 병인양요 등을 겪으면서 해양의 중요성을 깨달아갔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강제적인 개항, 청일전쟁, 러일전쟁, 일본의 식민지배는 해양력 및 해양질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윤 교수는 "한·중·일은 바다를 매개로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자연적 환경으로 인해 내부적이건, 대외관계에서건 역사가 발전하는 데에 해양적인 역할이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며 "이 지역에서 명멸했던 모든 종족들과 국가들은 이 해양의 영향을 어떠한 형태로든 받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다음 7강은 오는 25일 조우성 인천일보 주필이 '노래와 문학작품 속에 그려진 바다와 섬'이란 주제로 강연한다.
/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