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가 붙은 명칭이 흔해빠진 이유가 뭘까. '새누리당' '누리로 철도' '누리 텔레콤'을 비롯해 TV에서 자주 들리는 '누리꾼'에다가 누리 사업, 누리 집, 누리 마루, 누리 샘, 누리 놀이, 누리 플랜, 누리 노트, 누리 플라스틱, 누리 꿈스퀘어도 있고 온 누리, 두루 누리 등 '누리'가 뒤에 붙는 명칭도 있다. 요새 떠들썩한 말은 또 '누리 과정'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3~5세 교육과정이 누리 과정이고 '누리 산업'은 경쟁력 높이기를 위한 지방대학 혁신(New University for Regional Innovation)이라는 거다. 그런데 왜 하필 '누리'인가. '누리'란 '세상'을 뜻하는 무덤 속 고어(古語)다. 조선 중종 때 최세진(崔世珍)의 한자 교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를 보면 '인간 世'자가 '누리 세'자로 나온다. 여기서 '인간'은 사람이 아니라 '인간 세상'을 뜻한다. '누리'→ 옛 '세상'이다.

'누리 과정'부터 글러빠진 말이다. '세상 과정'이라니! 3~5세 아이들이 아니라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고 살아온 80~90대 노인들의 '노인정 간판'에나 딱 어울릴 말이 바로 누리 과정의 '누리정(亭)'이다. 그토록 무덤 속 고어를 발굴해 쓰기를 좋아한다면 '사람'은 왜 옛날 '아래 아'를 붙여 '살암(살암)'이라 하지 않는가. '아침'의 고어도 '아참'이고 '남자'의 고어는 '남진', '놀이→노리' '뿌리→불휘' '샛별→새별' '나비→나뷔, 나븨', 국유재산도 '나랏쳔'이다. 중국인에게 '누리'는 '奴隸(노예)', 일본인의 '누리'는 개칠, 먹 칠, ×칠 등의 '칠'이고. 고어가 아닌 우박과 메뚜기도 '누리'다. 그런데 '누리꾼'은 또 뭔가. '꾼'이란 씨름꾼 장사꾼 노름꾼 구경꾼 등 어떤 일을 전문적 습관적으로 하거나 몰두하는 사람이다. 누리꾼→'세상꾼'이 말이 되는가?

더욱 알 수 없는 건 엊그제 서울가정법원 1층에 이혼가정 아이 면접 교섭센터인 '이음 누리'가 개설됐다는 거다. 이음 누리라면 '이음 세상'이란 말인가. 세상을 잇다니! 이승과 저승을 잇기라도 하는가? 국회 새해 예산심의에선 또 '누리 과정(세상 과정)' 예산 편성을 놓고 여야가 격돌하고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당도 이제 많이 낡았으니 그만 '헌 누리당' '헌 정치당'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 아무튼 참을 수 없이 흥미로운 게 '누리'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