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hwabisch Hall

대량생산 축산 방법 등장 양돈농가 위기
'명품 토종 돼지' 유통·판매 등 주민 공유
입맛 소문… 기내·기업체식당 납품 성과
도축공장·식당등 400명 근무 '고용 창출'

■ Rewe

상인조합 연매출 69조 글로벌 기업 성장
직원 중 비조합원 비율 70% '구인 활발'
'1인1표' 의사결정·경영교육·저금리대출
주식회사형 슈퍼체인과 공존가능길 열어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는 사회적경제. 고용과 착취라는 노동 구조에서 벗어난 이 같은 '나눔의 경제'가 최근에는 사회 양극화와 일자리 부족의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은 일찍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조합원끼리 소득을 나눠 갖거나 주민들이 마을의 가치를 활용한 소득원을 직접 창출하기도 하는 등 발 빠르게 사회적경제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직업교육과 창업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취업 프로그램을 갖춰놨다.

경인일보는 5차례에 걸쳐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선진 사례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독일은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을 정도로 협동조합이 활성화돼 있다. 협동조합이 제공하는 일자리만 78만개이며, 3만5천개의 인턴십 자리도 창출하고 있다. 독일 협동조합의 중심은 금융, 농업, 상업, 소비자 등 4가지 분야다. 지난해 기준 7천6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협동조합 설립으로 평범한 농촌마을에서 지역경제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슈베비슈 할(Schwabisch Hall)과 100년 전통을 지닌 상인협동조합 레베(Rewe)의 성공 이야기를 통해 지역 협동조합의 발전방향을 가늠해 본다.

# 슈베비슈 할 협동조합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200여㎞ 떨어진 바덴뷔텐베르크주(州)의 농촌마을 슈베비슈 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얼룩 무늬가 특징인 고유품종의 돼지로 유명했지만, 대량생산의 축산방법이 등장하면서 농가에 어려움이 닥쳤다.

슈베비슈 할의 돼지고기는 품질은 매우 높은 반면 대량 생산된 돼지에 비해 비싸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농민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제 값을 받지 못하고 돼지를 넘기는 상황이 속출하면서 전통 양돈방식을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기 시작했다.

대량 생산을 위한 품종개량과 항생제의 과도한 사용으로 얼룩무늬의 고유 품종이 멸종할 위기에 처한 데다 고기의 질도 낮아졌다.

그러던 중 1986년 이 마을의 주민 루돌프 뷜러(62)씨가 협동조합을 만들어 돼지의 생산, 유통, 판매과정을 공유해 마을 주민끼리 수익을 나눠 갖자고 제안하면서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협동조합은 돼지고기의 높은 품질을 유지하고, 그 가치에 맞는 가격으로 판매해 농민들에게 수익을 돌려주자는 목표를 갖고 출발했다.

이들은 먼저 돼지고기의 유통단계를 줄여 나가기 시작했다. 양돈농가에서 소비자까지 7단계에 이르는 유통단계를 없애기 위해 도축, 가공, 소시지 생산, 유통을 직접 하기로 했다. 불필요한 단계가 생략되면서 돼지고기 가격의 30%가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새롭게 태어난 명품 토종돼지는 점차 독일 국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독일 전역의 식육가공·판매점 350곳과 직접 거래하게 됐고, 독일 유명 자동차 회사인 벤츠, 아우디 구내 식당에 돼지고기를 납품하기에 이르렀다.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 기내식에도 슈베비슈 할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처음 8명으로 시작한 협동조합은 2014년 현재 조합원 수만 1천450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전체 마을 주민 3천500여명 중 3분의 1이 넘는 것이다.

암컷 기준으로 적게는 3마리를 키우는 농가부터 최대 200마리를 기르는 곳까지 규모도 다양하다. 돼지는 좁은 우리에 가두는 보통의 방식이 아닌 들판에 자유롭게 풀어두는 전통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대형화되면서 2005년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4만㎡ 규모의 부지에 도축공장을 증축하고, 시설을 현대화했다. 또 돼지 이외에 소고기, 양고기 생산·가공, 허브 유통 등 관련 업종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직영 판매점과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컨설팅과 마케팅 등의 업무도 협동조합이 직접 담당한다.

덩달아 일자리가 생겼다. 1주일에 3천마리의 돼지를 도축하는 공장과 판매점, 식당에는 4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고용은 지역주민이 우선이다. 직영 판매장 7곳은 지역 야채와 과일 등을 취급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보탬이 됐다.

슈베비슈 할의 이 같은 방식은 인도와 세르비아 등 각 나라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성공 모델로 꼽히고 있다. 2001년 인도 케릴라주 허브농장의 주민 2천500명은 이 방식을 채택해 '에코랜드&팜 하베스트'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세르비아의 파프리카 경작 농민들도 이 방식을 따르고 있다.

슈베비슈 할 협동조합의 연간 매출은 1억2천만유로, 우리돈으로 약 1천4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곳 농민들이 수익 자체보다 재래식 농업의 한계를 주민들간 협동으로 뛰어넘은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조합 관계자는 강조했다.

조합 창시자 루돌프 뷜러의 아들 크리스티안 뷜러(34)씨는 "우리 돼지고기는 다른 돼지고기보다 30%가량 비싸지만, 그만큼 품질이 뛰어나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며 "농민들이 연대해 고품질을 유지하고 소득창출에 스스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다"라고 설명했다.

▲ 소규모 상인협동조합에서 글로벌 유통기업으로 성장한 레베협동조합. 공동구매, 공동브랜드 개발 및 지역 농산물 구매로 경쟁력을 갖춰 성장해나갔다. 사진은 프랑크푸르트 레베마켓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손님들 모습. /김민재기자
# 레베 협동조합

1927년 독일 쾰른 지역에서 창립한 상인협동조합 레베. 상인들이 공동구매를 통해 좀 더 저렴하게 물품을 구입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협동조합은 지금은 연매출 506억유로(약 69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마트 등 소매업을 주로 하는 레베는 독일에서 3천300개의 매장을 조합원 위탁 또는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유럽 13개국 1만5천700여 곳에 매장을 두고 있다. 전체 직원 중 비조합원 비율이 70%에 달할 정도로 조합원들의 이익을 넘어 일자리 창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일에서 상인협동조합이 발달하게 된 배경은 미국의 슈퍼마켓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기존 소규모 상인들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폐점하는 상인들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점포의 주인들은 상품의 공동구매, 공동물류, 공동브랜드 개발 등 도매기능을 하는 슈퍼마켓 협동조합을 설립해 자신들의 점포 경영을 개선하고 변화하는 유통환경에서 적응능력을 높여 나갔다.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전용 코너를 만들어 '가격 경쟁력'과 '지역사회 연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

지역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레베는 대형 그룹으로 성장해 나갔다. 경쟁 슈퍼마켓 체인이었던 '텡헬만'을 인수합병했고, 자체 브랜드인 '페니'와 '툰'의 이름을 레베로 바꿔 통일성을 확보해 나갔다. 현재 독일 길거리에서 빨간색 간판에 하얀 글씨로 쓰인 '레베' 간판을 보는 것은 일상이 됐다.

프랑크프루트 지역의 경우만 해도 본점을 중심으로 반경 3㎞ 내에 30곳의 크고 작은 레베 상점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대형마트에서 야채와 과일 등 특정 품목만 취급하는 상점까지 규모와 종류도 다양하다.

대형 유통업체로 성장했지만, 지분과 상관 없이 '1인 1표'라는 협동조합의 의사결정 구조 방식은 그대로 유지한다. 경쟁 유통업체 인수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사태나 일반 기업으로의 전환이 없었던 것도 조합원들의 결정 때문이었다.

슈퍼마켓 외에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지 않는다는 결정도 특정 경영진이 아닌 조합원들의 결정이었다. 레베는 각 판매점이 경영악화로 폐점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저금리 대출과 경영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같은 상인협동조합의 발달로 독일은 '까르푸'나 '테스코'와 같은 주식회사형 대규모 슈퍼체인과 함께 소규모 소매상들이 공존할 수 있었다.

안드레아스 레츠랄프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은 "조합을 설립한 상인들은 좋은 물건을 공동으로 싸게 들여오는 방식으로 대형 슈퍼마켓과 경쟁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일종의 그룹으로 발전해 경영진이 따로 존재하지만 상인과 소비자를 함께 생각하는 협동조합의 정신만큼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재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