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 문화 예술인 사망 때의 언론 반응이 바로 그 나라 문화의 두께와 저변, 수준의 척도다. 1989년 미국과 일본은 요란했다. 그 해 4월 미국 코미디언 루실 볼(Lucille Ball·78)이 사망하자 LA시는 국상(國喪)처럼 조기(弔旗)까지 내걸었고 그 두 달 뒤 일본 엔카(演歌)의 여왕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푸른 하늘의 종달새)가 52세로 죽자 일본은 온통 난리가 났다. 신문마다 호외를 냈고 1면 머리기사와 사회면 톱을 비롯해 간지 4~5면에 걸쳐 그녀의 노래 인생을 도배질했는가 하면 사설과 칼럼까지 썼다. 그럼 TV는 어땠는가. 5개 TV방송이 장장 29일장 과정과 장례식까지 동시에 생중계할 정도였다. 그건 마치 8.5 강도의 지진, 그런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 미소라 히바리의 유명한 노래 중 하나인 '카제사카바(風酒場)' 작곡가가 바로 한국의 박춘석씨였고 무려 2천700곡을 작곡, 숱한 가수를 발굴한 그였지만 그의 부음 기사는 달랑 박스 하나였다.

1989년 그 해엔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도 별세했지만 신문은 2단 부음기사와 관련 기사 한 조각이었고 2001년 원로 여가수 황금심씨도 1단 기사와 관련 기사 한 쪽뿐이었다. 배우, 가수 등 대중의 영웅뿐 아니라 학자와 작가, 언론인 사망에도 우리 언론 반응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지만 요즘은 꽤 달라졌다. 그럼 '한국의 미소라 히바리'로 불리는 이미자 별세 때도 신문 호외가 뿌려지고 TV가 긴급 뉴스를 쏘아댈 수 있을까. 일본은 1998년 영화감독 쿠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가 죽었을 때도 신문들은 호외를 냈고 1989년 그 해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蟲) 사망 때와 작년 11월 대형 여가수 시마쿠라(島倉千代子·75)가 타계했을 때도 언론은 요란했다. 그런데 엊그제 원로 영화배우 타카쿠라 겐(高倉健·83)이 사거(死去)하자 아사히신문이 18일 또 호외까지 냈다.

그의 죽음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그의 별세에 애도를 표한다"고 했고 인민일보는 외신면 기사로 '일본 저명 남자배우(男演員) 까오창졘(高倉健) 거세(去世)'를 영화(追捕) 속 사진(劇照)과 함께 실었다. 문화적으로야 앙숙이 아님을 연출한 것이다. 존중할 건 존중하고 배울 건 배우는 게 낫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