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한 폭의 영화 포스터가 있다. 1989년 5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연 배우 클라크 게이블(Gable)과 비비안 리(Leigh) 대신 포스터 그림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대처 영국 총리를 번쩍 들어 안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웃고 있는 그녀와 배경의 시커먼 핵폭발 버섯구름은 사뭇 대조적이었다. 반핵단체가 노린 점이야 뻔했다. 핵전쟁을 일으켰다간 그 누구든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는 경고였다. 북한 핵심 인사 중 그 포스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끊임없이 동족을 핵전쟁으로 위협하는 언사만은 삼가야 한다.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가 23일 또 청와대를 '핵전쟁 운운' 협박했다. 그들에게 하나 더 상기시킬 게 있다. 1960년대에 미·소가 핵전쟁을 일으켰다면 미국인 7천100만, 소련·중국인 7천600만 등 1억 몇 천만이 죽었을 거라며 미 국가안전보장공사가 지난 7월 공개한 문서 그거다.

미·소 cold war(냉전) 시기를 생생히 기억하는 딘 러스크(Rusk) 전 미 국무장관은 회고록에서 '그때 만약 케네디 대통령이 핵전쟁 사망자 보고를 받았다면 큰 충격과 함께 <그래도 우리가 같은 인류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며 뒤로 넘어갔을 것'이라고 썼다. 최초의 핵실험은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 북부 사막에서 했다. 암호명 'Trinity test(삼위일체 실험)'의 그 핵폭발로 사막의 모래가 녹아내리면서 깊이 3m, 직경 330m의 구덩이가 파였고 160㎞ 밖에서도 충격파가 감지됐다. 그때 '원폭의 아버지' 존 오펜하이머는 "이제 나는 가장 큰 파괴자가 됐다"며 신음처럼 말했고 트루먼 대통령은 "노아의 방주 이래 유프라테스 계곡시대에 예언된 불에 의한 파멸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된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미군 원폭이 투하됐고 1990년 5월 일본 정부가 공식 집계한 사망자는 29만5천956명이었다. 사망자 집계가 그토록 늦어진 이유가 뭘까. 오랜 세월 죽음과 사투를 벌이다가 끝내 사망한 피폭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거다. 한반도에서 핵폭탄 hot war(熱戰)가 터지면 남쪽만 죽는 게 아니다. 동족 협박 험구(險口)는 그만 닫아걸기 바란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