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도 커져 독이 되고 말았다
노믹스란 정권·정부 구성원이 교체될 때마다 따라붙는 말로
한 국가의 경제방향이 바뀌는
중차대한 정책변화에 어울려
아베노믹스(Abenomics)가 좌초의 기로에 섰다. 아베노믹스는 아베 신조가 2012년 말 총리가 되면서 채택한 일본경제 회생을 위한 충격 요법이다. 흔히 엄청난 금융완화나 막대한 재정지출만을 떠올리지만, 이 경제정책은 장기적으로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아베가 언급한 아베노믹스의 세가지 화살이다.
아베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이 정책의 최근 성적은 기대 이하다.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1.6%.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중이다. 이는 공식적으로 경기침체(recession)에 해당한다. 인플레이션을 유도해 20여년 불황을 마감하겠다는 당초의 공언과는 정반대 결과다. 아베 총리는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예고된 추가 소비세 인상을 유예하고 조기 총선 등의 정치적 도박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아베노믹스의 위기는 오늘날 경제정책으로 고민하는 세계 각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돈을 푸는 것만으로 획기적으로 나아지는 경제는 없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 경제사를 통해 늘 확인할 수 있지만, 우리가 종종 잊는 사실이다. 물론 경제가 안좋아지는 상황에서 돈줄을 죄는 것이 바보짓이라는 점은 1930년대 대공황 당시의 경험으로 잘 알게 됐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줄곧 양적 완화정책에 몰두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 경제가 완연한 회생의 기미를 보이는 곳도 미국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장기적으로 돈을 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 개혁이다. 이를 통해 민간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함으로써 경제의 성장동력과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경제정책으로서 구조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때로 고통스러운 수술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갈리는 경제주체 사이에 고통분담을 촉구하기도 해야 한다. 아베노믹스는 탄생 당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개혁보다는 환영받을 만한 금융완화에 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국민의 기대와 언론의 관심을 고조시키는 데 주효했다. 하지만 높았던 기대와 관심에 따라 실망도 커지는 오늘날에 와서는 독이 되고 말았다. 설령 정치인들이 경제정책에 대해 섣부른 희망을 심더라도 정부나 언론은 삼가야 한다.
올해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들어선 후 본격화되고 있는 이른바 '초이노믹스' 역시 아베노믹스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초이노믹스는 금융완화와 재정 조기집행 등을 골자로 한다는 점에서 '미니 아베노믹스'다. 차이가 있다면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점 정도일 것이다. 이번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가 악화되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경기를 살리려는 이유를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활력을 잃은 우리 경제의 분위기를 반전시켜 보려는 노력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가계부채의 부작용은 장기적 문제로 당장 터져 나올 일은 아니다. 반면 경제의 활력은 모든 국민이 당장 실감하는 바다.
미봉책에 가까운 경제활성화 대책은 아무리 극적이어도 장기적으로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아베노믹스는 여실히 보여줬다. 우리로서는 이번 정부들어 역설했던 창조경제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성장동력창출 정책이 구체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 아쉽다. 그런 정책은 시간이 걸려도 일관되게 추진되기만 하면 경제의 돌파구가 돼줄 수 있다.
사석에서 들은 얘기지만, 최 부총리는 초이노믹스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모든 정책의 주역인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 해서란다. 하지만 초이노믹스라는 용어에 대해서 진짜 낯부끄러워 해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 특별히 차별화되는 정책도 없는 마당에 '누구의 경제학'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민망하기 때문이다. 노믹스라는 말은 정권이나 정부 구성원이 바뀔 때마다 으레 따라붙어야 하는 말이 아니다. 한 나라 경제의 방향이 바뀌는 중차대한 정책변화에 어울리는 말이다. 누군가 자신의 차에 주기적으로 기름을 주유할 때마다 차가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했다고 주장한다면 우스운 일 아닐까?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