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들어 보리라~ 끝없는 님의 노래여."

17일 오후 인천 남구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 4층 강당에서 시각장애인 14명이 합창한 우리 가곡 '눈(雪)'이 울려 퍼졌다. 노래를 부른 시각장애인들은 이날을 위해 올 한 해 동안 복지관 성악반에서 실력을 갈고닦았다.

이날 무대는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이 '우리들의 특별한 하루'라는 제목으로 연 송년행사이기도 했다.

성악반뿐 아니라 국악반, 우쿨렐레(하와이 전통 현악기·사진)반, 하모니카반, 일본어반, 기초재활반 등 10개팀 58명의 시각장애인이 공연을 선보였다. 시각장애인과 가족, 자원봉사자, 후원자 등 300여 명이 송년회를 찾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임원순(51)씨는 성악과 우쿨렐레 공연에 모두 참여하며 팀을 이끌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삶의 유일한 위안이었다고 한다.

임씨는 "공연에서 부른 노래는 눈 내리는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한 곡"이라며 "하지만 '눈'이라는 제목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을 말해 주고 있기도 해서 선곡했다"고 말했다.

공연 참가자 중 최고령인 양관호(70)씨와 김기순(63·여)씨는 동요 '산바람 강바람'을 하모니카로 연주했다. 관객들은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이 무대로 올라가 두 연주자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무대 아래로 안내했다.

기초재활반은 북한 특수공작원들의 내무반 생활을 재미있게 그린 '개그 단막극'을 준비했다. 큰 동작은 없었지만, 시각장애인 관객을 배려한 생동감 있는 대사가 눈에 띄었다. 지난해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게 된 최재영(42)씨 등 반원 7명은 대부분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얻었다.

이제 막 간단한 점자를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는 이들은 "한때는 죽을 결심도 했다"며 실의에 빠진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복지관에서 점자를 배우고 보행 연습을 하면서 희망의 빛을 보게 됐단다. 기초재활반은 이날 관객들에게 가장 큰 웃음을 준 공연팀이 됐다.

박용월 인천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회장은 "시각장애인 가족, 자원봉사자, 후원자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마련한 무대"라며 "덕분에 시각장애인들도 생기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