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책임 지는 상황 된다면
비인격적 교육방식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재판결과 아랫사람의 인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계기되길 바라
조현아씨의 엽기적인 '땅콩회항'은 미국의 CNN방송에서 기막힌 이야기(Crazy Story)로 심각하게 다뤄졌다. CNN의 유명 앵커 앤더슨 쿠퍼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마카다미아 땅콩을 접시에 담지 않고 봉지째 준 것에 모욕을 느낀 바보 같은 부사장이 사무장을 내리게 하려고 비행기를 회항시켰다"고 두 번이나 반복해 보도했다. 국토교통부는 조현아씨를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이 과정에서 폭행과 협박이 있었는지 조사중이다. 언론은 조현아씨가 승무원과 사무장을 상대로 저지른 인격 모독적 행위에 대해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대한항공 오너 가족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됐다. 12월 16일 YTN이 인터뷰한 17년 경력의 대한항공 현직 기장은 "조양호 회장 사모님께서는 제공받은 음식이 너무 싱겁다든지 자기가 원하는 만큼 따뜻하지 않으면 화를 내면서 음식을 집어던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뉴데일리 경제의 12월 18일자는 2012년 인하대 운영과 관련된 정보공개를 요청하는 학생과 관계자들에게 조 회장의 아들 조원태씨는 "내가 조원태다. 어쩔래 ×××야"라고 욕설했고, 막내 딸 조현민씨는 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안하무인격으로 "나는 낙하산이다"고 말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12월 16일 한겨레신문은 2008년 12월 조현아씨가 조 회장의 친구인 홍승용 당시 인하대 총장에게 이사회에서 서류를 집어던지고 막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런 몰상식한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것일까?
조현아씨의 '땅콩회항'에 대해 조양호 회장은 "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켜 사죄드린다"며 "조현아의 애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조씨의 나이가 40세이고 직함이 부사장이지만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뉘집 자식'에 불과하고, 그 아이의 오만불손한 행동은 애비의 '가정교육' 문제였음을 시인한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조씨의 몰상식한 행동의 원인을 재벌가 가정교육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재벌가 가정교육은 선대의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갈등을 전제로 이뤄진다. 실제로 2005년 조 회장은 형인 조수호 회장이 와병중인 상황에서 한진그룹 지배구조 핵심인 정석기업의 차명 주식 반환과 대한항공 면세품 공급업체 변경 등 재산권 관련 법정싸움을 하면서 재벌가 형제들끼리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재벌가에서는 아랫사람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릴 때부터 배우고 특히 부모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위기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재벌가 재산상속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족간의 갈등이 아랫사람의 배신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무수히 경험해 왔기 때문에 아랫사람을 거칠고 비인격적으로 다뤄야 시키는 대로 한다고 배운다. 이 때문에 재벌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그토록 욕설과 막말이 난무하는지도 모르겠다. 재벌가 오너들의 거친 말과 행동의 결과가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대한항공의 보도자료와 사과문에서 확인됐다. 대한항공은 조씨가 임원으로서 서비스 문제를 지적한 것이 정당하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잘못한 조씨 대신 아무 잘못없는 대한항공 이름과 비용으로 사과문을 신문에 게재했다. 또한 대한항공 임직원들이 이 사건을 은폐·조작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사실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땅콩회항' 사건은 재벌가의 비인격적인 아랫사람 교육방식과 그 결과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앞으로 진행될 소송에서 조씨 대신 아랫사람들이 법적책임을 지는 상황이 된다면 사법부는 재벌가의 비인격적 아랫사람 교육방식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이제 욕설과 막말 등 비인격적 방식으로 아랫사람을 다루는 우리 사회의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조씨에 대한 재판결과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수많은 아랫사람의 인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