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정부 출범 이후 단행된 한국마사회 구조조정에 관여했던 마사회 고위간부가 경마장 관람대 5층에서 떨어져 숨진 사건이 발생, 사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은 일단 직원 퇴출과 관련한 마사회 안팎의 입장 등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유족들이 자살이유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는데다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 관람대를 자살장소로 택하는 등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아 사고경위에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14일 오전 11시50분께 과천시 주암동 경마장 구관 관람대 2층 바닥에 한국마사회 감사팀 처장 김종신(45)씨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숨져있는 것을 경마장내 식당 주인 김모(50·여)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식자재를 운반하던 중 구관 관람대 5층 난간에 사람이 매달려 있어 쳐다보는 순간 2층 바닥으로 추락했다”고 말했다.

발견당시 김씨는 와이셔츠 차림에 반듯이 누운 상태로 뒷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추락당시 벗겨진 듯 두 신발이 주변에 놓여 있었다.

숨진 김씨는 지난 98년 11월 단행된 마사회 구조조정 당시 인사과장으로 재직중이었으며 모두 40여명이 퇴출된 구조조정 대상자 선정작업에 실무를 담당했으며 지난해 2월 1급인 감사처장으로 승진했다.

김씨는 또 지난 3월 마사회 구조조정에 지역차별이 개입됐다는 내용의 '살생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파장을 일으키고, 직후 구성된 노사공동 진상조사위원회로부터 진위 여부를 조사받는 과정에서 '상부의 지시로 살생부를 작성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해 노사 양쪽으로부터 심한 질책과 비난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퇴출당한 전 마사회 직원들의 고소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데다 최근까지 마사회 인터넷에 자신을 비방하는 글이 올라오고 각종 협박성 전화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유족들은 “김씨가 숨지기 두 시간여 전인 이날 오전 10시께 다음날 휴가를 떠나기로 부인 심모(41)씨와 전화통화까지 하는 등 자살 이유가 전혀 없다”며 “숨진 장소가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목에 무엇엔가 졸린 듯한 흔적이 있는 등 타살의혹이 짙다”고 주장하고 있다.

◆ 구조조정 직간접 관련 추정

경마장 관람대에서 추락해 숨진 김종신(45)씨는 지난 84년 4급 공채로 한국마사회에 입사, 홍보과장과 기획과장, 인사과장, 감사팀장 등을 거쳐 지난해 2월부터 감사처장(1급)으로 재직해 왔다.

특히 지난 98년 현정부 출범이후 정부부처와 공기업, 산하단체 등에서 실시된 구조조정 당시 인사과장으로 근무하며 모두 101명의 퇴출대상자를 정리한 '구조조정용 살생부' 작업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이번 사고가 마사회 직원퇴출 사태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씨는 구조조정 직후인 지난 99년 퇴출자 중 1·2급 간부 출신 14명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에 따른 복직 신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해고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었다'는 내용의 회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실무를 담당했고 결국 퇴출자들의 복직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퇴출자들은 김씨가 작성, 제출한 문건이 '허위'라며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검찰조사 결과 혐의사실이 밝혀져 지난해 말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특히 지난 3월 한국마사회의 구조조정이 특정지역 차별 및 '정치적' 잣대에 의해 만들어진 '살생부'에 따라 이뤄졌다는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노사공동의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김씨는 노사 양쪽으로부터 살생부 제작의 실무자로 지목되며 유·무형의 압력을 받아온 것으로 주변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진상조사위 조사과정에서 김씨는 '당시 오영우 회장의 지시에 따라 살생부를 제작했다'는 '양심선언성' 진술을 했고 이로 인해 퇴출자는 물론 현 마사회 고위직과 동료들로부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경찰은 이같은 배경이 평소 소심한 성격이었던 김씨의 직접적 '자살' 동기가 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유족들은 자살 가능성에 대해서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와 검찰의 조사를 받으며 수차례 '사표를 내겠다'고 밝히는 등 괴로워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살할 만한 사유는 아니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퇴근후 곧바로 귀가하는 가정적인 가장이었고 숨지기 직전에도 부인과 다음날 안면도로 떠날 예정이던 휴가일정과 숙박 문제를 의논하는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다는 것.

유족들은 김씨가 유서를 남기지 않았고 사체에 목이 졸린 듯한 흔적이 있으며 오는 17일 미국에 거주하는 형을 만나기로 약속하는 등 자살했을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