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자본 이동 불가피 글로벌 금융불안
제조업 갑자기 추락 한국경제 불안감 고조
외환위기 극복과정 필적하는 구조개혁 절실


한 해를 마무리 할 때다. 그 일에 어김없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가올 새해를 전망하기 위해서라도 떠나보내는 해를 그렇게 두루뭉수리 하게 정리해 버려서는 곤란하다. 올 한해를 관통했던 경제흐름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경제는 거의 예외없이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이어질 트렌드를 네가지로 정리해봤다.

■ 양적완화 마무리와 금융불안=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일본, 심지어 중국 등 거대 경제권은 예외없이 어마어마한 돈을 풀었다. 이 미증유의 실험을 통해 인류가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은 돈을 공급하는 것만으로 경제가 살아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례적 경기침체에 직면해서는 돈줄을 죄는 것이 아니라 풀어야 한다. 그것이 1930년대 대공황의 교훈이다. 그러나 유동성 공급은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정책효과보다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

가장 먼저, 대규모로 돈을 풀었던 미국이 앞장서서 양적완화 정책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 후에는 저금리 정책도 끝내야 한다. 그에 따라 나라나 지역마다 돈값(금리) 차이가 커질 테고, 대규모 자본의 이동이 불가피하다. 내년 세계적 규모의 금융불안을 점치는 이유다.

■ 경제 회복의 양극화= 미국은 경제회복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하지만 지표에 비해 실질소득 증가와 같은 체감경기 회복이 더디다는 것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유럽은 그나마 지표상 경제회복마저 어렵다. 심지어 유럽내 일부 국가의 위기마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근본적으로는 유럽통합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부실은행 통폐합과 유로채권 발행 등이 그것이다. 긴축 논리에만 사로잡혀 있는 독일과 메르켈 총리의 결단이 절실하다.

일본은 새로운 불황의 징조 앞에서 아베노믹스를 수정해야 한다. 돈을 푸는 것보다 구조개혁에 더 주안점을 둬야 한다.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은 상대적으로 나아보이지만 성장둔화의 속도가 관건이다. 지난 5년여간 전세계 각국은 부지런히 쌈짓돈을 쏟아 부었지만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을 더욱 걱정해야 할 처지다. 경제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다.

■ 저유가와 상품 가격 하락= 글로벌 경기회복이 지지부진함에 따라 전반적인 상품가격이 가라앉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하락속도와 깊이가 심상찮은 유가에는 다른 국제정치적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 셰일가스 같은 새로운 에너지원 공급못지않게,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주요 산유국의 증산 조치도 한몫 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나 이란처럼 재정수입의 60% 가까이를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미국의 견제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결과 새해 들어 처음 목격하게 될 글로벌경제의 변고는 러시아의 외환위기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막기 위해 푸틴정부는 금리 대폭인상 이후 국내 자본유출 방지책을 발표하겠지만, 장기적으로 1998년 모라토리엄사태의 재연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푸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강한 러시아'라는 기분좋은 환상을 심어줬지만 그 대가가 클 것이다.

■ 다시 호두까기 경제로, 한국경제 위기론=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금융불안, 대내적으로는 제조업의 갑작스러운 추락으로 우리 경제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될 것이다. 심지어 제2의 외환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이들마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경제의 위기는 새삼스럽게 닥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있다. 다만 외환위기처럼 어느 날 팔·다리가 뚝 부러지는 골절상의 형태는 아니다. 충격은 덜하지만 좀처럼 완치가 안되는 골병의 형태다. 장기화 되고 있는 내수 불황이다. 외환위기 극복 이후 일본경제는 정체 혹은 퇴행하고 중국도 속도를 못내면서 '역샌드위치 경제'라는 반짝 호황을 누렸던 우리는, 다시 외환위기 당시의 '호두까기(nut-cracker) 경제'를 맞게 됐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 필적하는 결연한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