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호수'였던 시화호 전철 밟겠다니…
기정사실화 된 '화성호 담수화' 재고 돼야
젊음은 목표를 정조준하고 직선으로 달려 나간다. 그게 멋이고 맛이다.
우리는 식민지 수탈과 전쟁으로 배고픔의 긴 역사를 지닌 슬픈 민족이다. 그래서 우리는 곡식 익어가는 땅을 깊이 사랑한다. 농사 지어 식구들 배불리 먹일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던, 젊디 젊었던 가장들에게 바다를 메워 농토를 만드는 간척사업은 반드시 맞춰야 할 과녁이었다.
그런데 몇 십년 세월이 흐른 요즘 농지가 더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인당 연간 쌀소비량만 살펴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1970년 136.4㎏이던 것이 2012년에는 69.8㎏까지 절반으로 확 줄어들었다. 매년 '쌀 재고 쌓여있고 풍년에 수매가 걱정'이라는 뉴스가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서해안의 주요 도시인 우리 화성시도 대규모 간척사업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극심한 수질오염으로 1998년 담수화를 포기하고 해수유통으로 조력발전까지 하고 있는 시화호와 2008년 궁평리~매향리를 잇는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화성호가 있다.
이 화성호 때문에 요즘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지금은 배수갑문으로 바닷물을 유입시켜 수질관리를 하고 있지만, 20년도 더 전에 세웠던 화옹지구와 시화지구 간척농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겠다던 시화호의 계획 그대로를 화성호에 적용해 해수유통을 완전히 차단하고 민물호소를 만들겠다고 한다. '죽음의 호수'였던 시화호가 밟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국내 대부분의 담수호는 농업용수로 쓸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수질오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남양호, 아산호, 삽교호, 간월호 모두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썩은 물일 뿐이다.
2012년에는 안타깝고 다급한 마음에 시민들과 함께 해남 땅끝마을부터 국회까지 522㎞를 걸었다. 20여 일 전국에 흩어져 해수유통 지지 서명도 받아 건의서와 함께 국회와 국무총리실, 농림축산식품부에 전달했다. 그와 같은 노력으로 2013년 화성호 수질보전대책협의회는 2016년 수질보완대책을 중간평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담수화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화성호에서 시화지구 탄도호로 물을 끌어오는 도수로 공사를 국비 306억원을 들여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화성호의 담수를 이용해 탄도호 물을 농업용수로 만든다는 이 사업은 화성호 담수화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화성시는 발칵 뒤집혔고 화성시민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어 겨울왕국 국민이 돼 버렸다.
답답하다. 뜨거운 청년기를 지나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기 시작한 어른은 무턱대고 달려 나가지 않는다. 앞뒤 촘촘히 살피고 되돌아와서 또 한 번 재어본다. 그리고 끊임없이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국가정책이야 말로 뜨겁기만 해서는 안 된다. 또 오만해서도 안 된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혜로 성숙하고 유연하게 다가서야 한다.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는 묻는다. 아들 딸, 손자 손녀에게 '죽음'의 땅과 물을 물려주겠느냐고.
/채인석 화성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