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 완화한다며 '안전' 팽개친 의정부화재
또다시 시작된 당정의 사고방지 관련입법 착수
근본적 방법 찾는건 요원한 일인지 답답하기만


또 인재(人災)가 발생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 의하면 지난 10일 의정부시 의정부3동 오피스텔 밀집지역에서 발생한 불로 26살 한모씨 등 4명이 숨지고 124명이 부상했다. 이재민은 225명으로 집계됐다. 모든 사고는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인재(人災)인 게 틀림없지만 이번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화재는 인재(人災)임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전·월세 대책으로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지난 2009년 도시형 생활주택 건축을 장려했다. 그러면서 주차장건설 기준, 소음 기준, 건물 간 거리와 진입로 폭 규제 등을 대폭 완화했다. 이 때문에 화재가 발생한 건물들은 1.2∼1.5m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건물 간격이 6m 이상 돼야 하는 일반 아파트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규제를 완화한다며 '안전'을 팽개친 대가가 5년 만에 대형 화재참사로 돌아왔다.

'10층 이하' 건물은 '11층 이상'보다 안전할 거라며 각종 안전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한 소방정책도 참사를 막지 못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불이 시작된 대봉그린아파트와 바로 옆의 쌍둥이 건물 드림타운Ⅱ는 10층짜리 주거용 오피스텔로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 현행 소방법은 11층 이상 건물에만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래서 2013년 11월 입주를 시작한 이 건물들은 지난해 10월 소방검사에서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두 건물은 주차장으로 쓰는 1층 필로티(개방형 공간)에도 소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지만 아무 제재를 받지 않았다. 차량 20대 미만의 주차장은 소방시설 규제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대봉그린아파트 1층 주차장은 천장 환기구가 막혀 있던 탓에 화염과 연기가 주변으로 솟아오르면서 피해를 키웠다.

더욱 슬픈 것은 '외양간 고치기'가 또다시 시작됐다는 것이다. 당정은 조만간 긴급협의회를 열어 사고방지를 위한 관련 입법에 착수한다고 한다. 완강기 설치 의무가 없는 11층 이상에도 완강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비상탈출로를 더 확보하는 한편,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소방차 진입로를 확대 정비하는 방안 등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안전처는 한술 더 뜬다. 화재발생시 대형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건축물 외부 마감재 기준을 강화키로 하고 '이명박정부'에서 주택보급 확대를 위해 안전규제를 완화한 도시형생활주택의 화재 취약성에 대해 전수 조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잠을 자면서도 공무원들은 '규제완화'를 생각하라 했지만 이번 화재의 책임을 은근히 이명박정부의 규제완화 책임으로 돌리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도시형생활주택과 관련, 당초 건축사들을 비롯한 건축관련 전문가들로부터 문제 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주차장확보 문제라든지, 건물간의 이격거리가 너무 좁다는 점이 지적됐고, 300가구 미만은 아파트 사업승인이 아닌 일반 건축물로 간주해 허가를 단순화하는 등 '빨리빨리 문화'가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들의 생활편의를 위함이라지만 이 같은 법은 또 있다. 국토해양부가 지난 2012년부터 다중주택이나 다가구주택에 설치하는 발코니는 개소 수와 관계 없이 모두 확장해 거실 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발코니 등의 구조변경절차 및 설치기준'(고시)을 개정했다. 언제 또 건물구조 상 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난해 우리는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를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 고양 시외버스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임병장 총기난사, 판교 환풍구 추락 참사, 담양펜션 화재, 오룡호 침몰 등의 대형사고로 수 많은 목숨들을 잃었다. 사고발생은 육(陸)·해(海)·공(空)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외양간 고치기에만 급급하다.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지만 소를 잃지 않는 근본적인 방법을 찾는 건 요원한 일인지 답답한 마음이 드는 새해다.

/이준구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