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초 에이즈 감염자가 매혈한 혈액이 국산 혈우병 치료제를 제조
하는데 섞여 들어간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또 이 치료제를 사용한 혈우병 환자들이 무더기로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나 인과관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13일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지난 90년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모르
고 매혈한 에이즈 감염자 2명의 혈장이 국내 한 제약사가 91년 생산하기 시
작한 혈우병 치료제에 원료의 일부로 섞여 들어갔다.

또 이 제약사가 91년부터 93년까지 공급한 혈우병 치료제 주사를 사용한 국
내 혈우병 환자 120여명중에서 15% 가량인 18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보건원 이종구 방역과장은 “이와 관련해 94년과 96년 두차례
조사위원회를 구성, 역학조사를 벌였지만 환자들이 혈우병 치료제뿐 아니
라 혈장과 혈전 등을 자주 수혈하는 등의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어 문제의
치료제와 에이즈 감염 사이의 뚜렷한 인과관계를 밝힐 수 없었다”고 말했
다.

또 미국 기술진을 불러 문제가 된 치료제의 생산공정을 점검했으나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이 과장은 덧붙였다.

이에 대해 울산의대 미생물학교실 조영걸 교수는 최근 에이즈 관련 국제 학
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당시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혈우병 환자 4명과
지난 91년 혈우병 치료제 원료로 사용된 에이즈 감염자의 혈액샘플을 분자
유전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바이러스 염기서열이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혈우병 치료제는 작은 출혈에도 피가 멎지않아 평생 혈액응고인자를 주사맞
으면서 살아야 하는 만성 유전질환인 혈우병 환자를 위한 의약품으로 혈액
중에서 혈액응고 성분만을 농축해 제조한다.

당시 이 제약사는 치료제 원료인 혈장에 대해 모두 에이즈 항체검사를 실시
했지만 문제의 매혈자 2명은 항체가 형성되기 이전 단계의 초기 에이즈 감
염자로, 여러차례 매혈을 했지만 마지막 검사에서만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
였다.

일반적으로 에이즈 항체가 형성되는데는 감염 뒤 보통 6∼14주, 길게는 2년
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