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두 위선적 자아를
정직하게 성찰할 수 있고
타인을 자신처럼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이 내면화됐을때
교도소 안과 밖을 같게하고
공유하는 형벌체계 만들수 있어


전직 대통령들과 그 친 인척뿐만 아니라 재벌총수들까지도 구속되는 요즘 감옥이라 불리곤 하는 교도소가 새삼 세간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비밀의 세계로 남아있는 교도소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으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 것일까?

인간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함을 형벌로 하는 신체형의 시대가 사라지고, 시간과 공간을 단위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함을 형벌로 하는 소위 교도소제도가 인류사회에 정착된 것은 불과 200여년 전부터다. 18세기 중반까지만해도 인류사회의 형벌은 수많은 군중을 한곳에 모아 놓고 죄인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면서 일종의 굿판을 벌이던 체형(體刑)이 그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기엔가 홍길동이나 로빈 훗과 같은 인물이 의인(義人)행세를 하던 시절이 도래하자, 도적의 무리가 백성들의 동정을 받고 매를 치던 국가의 형리(刑吏)가 조롱을 받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비밀스런 장소에 구금의 장소가 설계되었는데, 이것이 감옥의 시초다. 이러한 감옥의 정착은 새로운 이념의 탄생과 사회구조적 측면의 대변혁과 맞물려 가속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민주이념의 확산과 신분제의 소멸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이때에 앞서가던 박애주의자들은 범법자들을 불운을 타고난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고 오염되지 않은 격리된 공간에 시간제로 구금하고, 엄격한 침묵과 규율 속에 노동을 강제하면 새사람으로 만들어지리라는 낙관적 세계관을 펼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완전한 격리속의 인간은 불행과 상처로 채워진 기억의 노예가 될 뿐, 그 곳은 단절과 고독으로 인한 정신질환자만을 양산하는 공간으로 전락하였다. 물론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러한 감옥의 역사적 실험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신체적 가학이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거스름에 따라 형벌제도에서 소멸되었듯이,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제한하여 사회와 단절시키는 것을 형벌로 하는 패러다임 역시 인류의 영원한 유산으로 남는 데에는 그 당위성이 부족하다.

어느 나라의 인권상황이나 국격을 가늠하려면 그 나라의 교도소를 방문해 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그 사회가 실패하고 낙오된 그리고 불편한 이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라면, 이상적인 교도소를 만든다는 것은 곧 교도소의 안을 밖과 같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앞서가는 개혁자들의 주장을 현실로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교도소의 환경과 바깥세상의 환경을 유사하게 만들어야 함은 물론 사람들 간의 진정한 교류를 가로막는 편견의 장벽까지를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감옥에 갇힌 범법자들도 언젠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이웃이며, 동시에 그들의 대부분은 언젠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이웃이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급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어 머지않아 곧 미래 쇼크로 다가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더 나아가 변화의 세찬 물결에 대처하지 못해 지체된 집단은 집단노이로제 환자로, 폭력난무의 원흉으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위험분자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고 부언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의 시간과 공간을 차단하는 형벌은 이 시대의 사조를 역행하는 패러다임이다. 물론 범죄인의 시간과 공간을 차단시켜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동시에 우리의 안전을 확보하는 방식이 이 시점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원시적인 접근이고 미시적인 대안이며 차차선책이라는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도소의 안과 밖을 같게 하고, 그들과 시간과 공간을 능동적으로 공유하는 자신감있는 형벌체계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가능하다. 다만, 그 시기는 우리 모두가 위선적 자아를 정직하게 성찰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결과로 타자를 자신처럼 배려하는 공동체적 정신이 내면화되었을 때 비로소 다가올 수 있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