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첫문 시설 운영 맡으면서 인연
황무지같던 인천빙상 ‘효자종목’ 키워

선수 훈련공백 우려 2개월 미룬 폐장
“슬프기도 하지만 여건 좋아져 다행”


인천의 유일한 빙상장이자 인천 동계스포츠의 산실인 ‘동남스포피아’ 아이스링크(이하·동남 아이스링크)가 이달 말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인천시 연수구 연수동에 위치한 동남 아이스링크는 지난 1994년 5월 개장해 20년이 넘게 인천 빙상 꿈나무들을 발굴하고 키워낸 곳이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은메달리스트인 인천 연수여고 출신 국가대표 이은별(24·여, 현 소속 전북도청)에 이어, 인천을 대표하는 쇼트트랙 기대주로 성장하고 있는 천희정(22·여, 연세대), 그리고 동갑내기 친구인 김연아와 더불어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버팀목이었던 전 국가대표 김나영(25) 등 인천의 내로라하는 빙상 선수들이 모두 이곳 아이스링크에서 배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인일보 2월12일자 15면 보도).

이 곳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현대식 시설을 갖춘 실내 빙상장은 전국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인천 시민들에게 동남 아이스링크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과 함께 즐겨 찾았던 추억의 빙상장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에 조금 앞서 개장한 대동월드 아이스링크가 지난 2003년 경영 악화로 문을 닫는 바람에 인천에는 동남 아이스링크가 유일한 빙상장이었다.

그런 동남 아이스링크가 다음달 초 국제 규격의 최신식 시설을 갖춘 ‘선학국제빙상장’이 개장하면서 인천 동계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된 것이다.

동남 아이스링크는 10여 년 전에도 문을 닫을 위기가 있었다. 당시 박대성(54) 인천시빙상경기연맹 회장이 임차해 쓰던 아이스링크를 포함해 동남스포피아 건물 전체가 경매로 나온 것이었다.

“경매가 있던 날 새벽 2시까지 고민했어요. 어느 건설업체에서 아이스링크를 사들여 골프 연습장을 만들려 한다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외면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야, 이거. 빙상장이 없어지면 인천 동계 체전 종목도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인데’라는 생각이….”

박 회장도 빙상 선수였다. 부모님의 권유로 여섯 살 때부터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해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빙판 위를 달렸다. 그러했기에 후배이자 제자인 아이들이 눈에 더 밟혔던 것이다.

“정말 속이 바싹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어요.” 고민 끝에 박 회장은 부모님 등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큰돈을 들여 동남스포피아 맨 꼭대기 층인 아이스링크를 낙찰받는다. 박 회장은 “적자에 허덕이는 등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껏 운영해 온 것은 우리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박 회장은 20대 초반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인천에서 부사관으로 군 복무했다. “아직도 월미도와 연안부두 등에서 해안 경계를 서던 기억이 나요. 전역하고 나서 고향에 내려갔다가 10여 년 뒤에 다시 인천으로 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인 대구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당시 쇼트트랙 종목으로 명성을 떨치던 정화여중·고교의 감독을 지내면서 수많은 국가대표를 길러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안상미 현 SBS 해설위원도 그의 제자다.

“그때만 해도 운동하기 참 열악했어요. 지금처럼 사시사철 여는 스케이트장이 없었지요. 그래서 여름에는 어쩔 수 없이 롤러스케이트장에서 훈련을 시켰어요. 기억하시죠? (앞뒤 양쪽으로 바퀴가 달린)네발 짜리 롤러. 그거는 폼(자세)이 망가져서 안 돼요. 요즘은 흔한 인라인스케이트를 그 당시에 어렵게 구해 와서 훈련을 시키던 시절이었습니다.”(웃음)

박 회장은 그렇게 대구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던 중 1994년 어느 날 인천으로 와 달라는 뜻밖의 연락을 받는다. 바로 동남스포피아 건물을 세운 회사에서 아이스링크 운영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제자들이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다시피 하면서 지도자였던 제 이름도 신문에 꽤 실렸어요. 회사에서 그걸 보고 연락을 해 왔나 보더라고요.”

박 회장이 새로 터를 잡은 인천에서 빙상 꿈나무들을 키워야겠다고 결심을 한 계기가 있었다. 빙상 종목이 아이스하키와 하나의 협회(연맹)로 통합돼 있다가 지난 1999년 3월 분리된 것이다. 아이스하키와 통합돼 있을 때는 선수도 없고 협회 쪽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분리된 인천시빙상경기연맹에서 사무를 총괄하는 전무이사로 일하며 우수한 지도자를 초빙해 오는 등 인천 빙상의 기틀을 다져나가기 시작했고, 어느덧 빙상 종목은 전국 동계체육대회(이하·동계체전)에서 없어선 안 될 인천의 메달 효자 종목이 됐다.

“인천이 동계체전에서 최초로 메달을 따낸 것도 빙상 종목입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용성이가 초등학교 때 따낸 거예요.”

박 회장은 김나영, 이은별, 천희정, 김재민(인하대, 피겨) 등을 비롯해 연수여고에 재학 중인 전혜원(쇼트트랙) 등 차기 유망주들까지 일일이 손꼽으며 제자들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박 회장은 장애인 빙상에도 눈을 돌렸다. 수년 전 장애인 빙상 선수들이 스케이트를 탈 장소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것이었다. 그는 곧장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도록 아이스링크를 내주고 지도자들까지 붙여 줬다. 결실은 금방 맺어졌다.

전국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인천 장애인 동계스포츠의 최고 강세 종목으로 단연 빙상이 꼽히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폐막한 제12회 전국 장애인 동계체전에선 금 6, 은 3, 동 3개를 일구며 종목 종합순위 1위를 차지했다. 박 회장은 현재 인천시장애인빙상연맹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박 회장과 20년 넘게 동고동락해온 동남 아이스링크는 두 달 전인 지난해 12월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동남 아이스링크 회원과 빙상 동호인들이 연맹을 찾아와 선학국제빙상장이 문을 열 때까지 만이라도 폐장을 미뤄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이를 외면할 수 없었던 박대성 회장은 동남 아이스링크를 다른 시설로 고쳐 사용할 계획인 임차인을 설득해 2개월 치 사용료를 지급하고 이달까지 운영해온 것이다.

이제 동남 아이스링크와 진짜 작별을 해야 하는 박 회장에게 어떤 심경인지 물어봤다.

“문을 닫으려니 슬프기도 하지만 기쁜 마음이 앞섭니다. 선학국제빙상장이 개장하면 선수들은 물론이고 인천 시민들도 더 좋은 시설에서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을 것 아닙니까. 20년 넘게 운영한 게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선학국제빙상장이 이름에 걸맞은 빙상장이 되도록 연맹 차원에서도 최대한 힘을 보태겠습니다.”

/임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