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시절 교사 지속적 막말
졸업후에도 스트레스 장애
교단 언어폭력 ‘범죄’ 판결
학생 인격체로 존중되어야
교사가 학생에게 한 막말이 법원에서 정서적 학대로 인정됐다. 경인일보가 수원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상대로 비난성 막말을 한 사실을 보도한 후, 학생의 피해 사실과 치유 과정, 학부모의 미약할 수밖에 없는 대응 등 정서적 학대에 대해 10여 회에 걸쳐 보도한 기사가 법원에서 결정적인 참고자료가 됐다.
이번 판결로 교단에서 일어나는 말 한마디가 신체적 폭력과 같은 중대 범죄임이 확인됐다. 이에 신학기를 앞두고 교단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서적 학대의 유형과 교원양성 과정의 문제점, 교사와 학생 간 관계의 기준에 따른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학교현장 곳곳에서 교사들의 언어폭력 등 정서적 학대가 심각하다. 언어폭력은 간혹 체벌을 대신하는 학생 통제수단으로 미화되지만, 상당수 피해 학생들은 심각한 정신적 상처와 후유증으로 성장 후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언어폭력은 신체폭력이나 성(性) 학대 등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학교 특성상 쉽게 드러나지 않은 채 피해 학생이 성인이 된 이후까지 피해가 지속된다.
정모(28·여)씨는 10년 전 성남의 모 고등학교 재학시절 교사로부터 3년간 지속적으로 당한 언어폭력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지금까지 정신과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10여년 간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정씨는 지난 2005년 1학년 입학 직후부터 지각 등 학칙위반을 할 때마다 담임교사에게 ‘그 따위로 살지 말아라’, ‘너 같은 애 술집에 널렸다’는 등의 폭언을 들었다. 이후 담임교사의 막말은 1학년 내내 이어졌고, 2학년에 올라가자 복도 등에서 마주칠 때마다 ‘너랑 한번 자고 싶다’는 등의 성희롱도 서슴지 않았다.
교사의 성희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 특정 부위를 접촉하는 성적 학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 정씨는 교사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려워 신고는 물론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이야기조차 하지 못했다.
정씨는 “아직도 그 때 일들이 떠오르면 가슴이 답답해 아무 것도 못한다”며 “악몽으로 수면유도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9월 수원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은 김모(59·여) 교사는 반 학생들에게 ‘정신병자’라고 말하거나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학생에게 ‘나는 거짓말쟁이’라고 복창하게 했다. 정서적 학대는 여지없이 폭력으로 이어져 교사는 한 학생이 급식시간에 반찬을 남기자 식판을 휘둘러 상처를 입혔다.
또 인천의 한 특성화고교에서 최근 교사가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쓰레기 같다’, ‘졸업해봤자 남자들은 배달이나 하고 여자들은 공장에서 미싱이나 돌릴 것’이라는 폭언을 장기간 지속했지만 뒤늦게 학생들의 항의로 이같은 사실이 외부에 드러났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접수된 전국 학생 폭력신고는 2012년 16건, 2013년 28건, 지난 2014년 144건으로 급증했고, 이중 절반 정도는 정서적 학대로 나타났다.
교단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언어폭력은 그동안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피해 학생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교사들의 말 한마디와 잘못된 행동으로 학생들이 상처를 받았다면 범죄가 된다는 것이 확인됐다.
결국 교단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정서적, 공감적 간격을 좁히지 않는다면 사소한 농담조차 정서적 학대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일상적인 대화라도 학생에게 불쾌감이나 상처를 준다면 폭력이고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교사가 학생들을 평등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할 때 정서적 학대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현·김범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