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던 일이 막상 터지고 나니 눈앞이 캄캄하네요. 엊그제만 해도 타결이 연기될 것 같아 한시름 덜었는 데 이렇듯 갑작스러운 타결소식을 접하고 보니 마치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처럼 농민이 철저히 무시되는 나라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농업에서 손을 털고 일어나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화성시 남양동에서 1천여평의 포도밭을 재배하는 김모(56)씨는 24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타결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진 심기를 달래지를 못했다.
400여평 규모 비닐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전모(43·용인시 남사면 진목리)씨도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농업분야를 희생양으로 협정을 타결한 정부는 농민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느냐”며 하늘만 무심히 쳐다봤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타결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도내 농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협정타결과정에서 대부분의 품목이 개방에서 제외 또는 늦춰짐에 따라 최악의 시나리오는 빗겨갔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도내 농업계가 받아들이고 있는 체감지수는 기반붕괴를 우려할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화성, 안성지역 포도농가들은 사과와 배만을 '즉시 개방'에서 제외시킨 점에 대해 형평성을 벗어난 협상자세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협정타결에서 비록 비수확철 계절관세란 보호막을 치긴 했으나 칠레 현지 포도 수확기와 국내 시설포도 출하기가 겹침에 따라 생산농가들의 피해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세계 포도시장의 24%를 차지하는 칠레산 저가 포도의 물량공세를 앞으로 이겨내기가 힘들 것”이라며 “빨리 작목을 바꾸든지 아니면 아예 농사를 포기하든지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라며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농업계에서는 이들 작목의 직접적 붕괴보다 넘쳐나는 저가 수입과일(칠레산 사과가격은 국내 사과의 12.6분의1, 복숭아 10.8분의1, 배는 10.3분의1 수준·도표참조)의 소비대체 효과 유발을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방울토마토 대신 값싼 칠레산 포도를 선호한다면 전반적으로 국산 과일수요가 급감하면서 이들 농가들이 일시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모처럼 수출길을 튼 이천 장호원 복숭아를 비롯 즉시개방을 피한 사과와 배 등 도내 주산품의 생산기반이 무너지고 농가소득이 감소되는 등의 악순환을 피할 길이 없다.
이같은 위기감은 과수와 시설과채류뿐만 아니다. 당장 수입물량이 늘어날 쇠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등 축산업계도 위기감의 사정권에서 그리 멀지않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양돈농인 최모(39·화성시 봉담면)씨는 “한·칠레 FTA협정타결은 농촌고사의 서막에 불과하다”며 “농촌경제활성화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농업기반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타결 흔들리는 天下之大本] 수도권 농가 비상
입력 2002-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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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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