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은 세계적으로 보아도 한반도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가장 다양한 모양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고인돌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고인돌은 사회계급의 분화가 나타나면서 지배층들이 주로 만들었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웅장하고도 커다란 바윗돌을 이용하거나 인위적으로 돌을 캐어 만든 고인돌은 납작한 판돌이나 덩이돌 밑에 돌을 괴어 외형상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 있는 ‘괴어 있는 돌’이란 뜻의 지석묘(支石墓)를 우리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형태가 다양한데 그 모양에 따라 탁자의 모양을 하고 있어 탁자식,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 바둑판식 고인돌로 부릅니다. 그리고 개석식은 덮개돌 아래에 받친 돌이 없이 그냥 큰 돌로 덮었다고 하여 ‘덮을개’(蓋), ‘돌석’(石)자를 이용하여 개석식 고인돌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탁자식, 바둑판식이라고 부르기 전에는 주로 ‘북방식’, ‘남방식’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이 북방식과 남방식 고인돌의 명칭이 우리 용인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용인에는 탁자식을 한 모현 왕산리 고인돌, 양지 주북리 고인돌, 구성 상하리 고인돌과 개석식을 하고 있는 포곡 유운리 고인돌, 원삼 맹리 고인돌, 백암 장평리 고인돌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용인 아래지역으로는 탁자식 고인돌이 거의 분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고인돌 분포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제 강점기부터 탁자식과 바둑판식의 경계를 바로 우리 용인지역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용인 이북에 있던 탁자 모양의 고인돌을 북방식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입니다.
이후 탁자식이 전라도 지역에서도 발견되는 등 용인지역 이남에서도 여러 곳에 분포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남방식과 북방식이라는 용어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남방식과 북방식의 경계가 용인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 탁자식 고인돌이 주로 분포하는 지역을 고조선 영역으로 본다는 점에서 용인지역까지 고조선의 영향이 미쳤음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용인지역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했던 이유는 한강의 최상류와 안성천의 최상류가 만나는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용인지역은 선사시대부터 한강 유역과 그 이남의 문화가 서로 만났던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장문 용인 대지중학교 수석교사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