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마친뒤 침몰’ 지원거부
‘국민 성금’ 지급 이유 들어
의사자 국가 보상에서 제외
별도 행사없이 쓸쓸히 추모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천안함 폭침 사고가 발생한 지 1주일만인 2010년 4월 2일 오후 8시 30분 인천 대청도 남서쪽 55㎞ 해상. 해군의 요청으로 천안함 실종 장병 수색작업을 하던 저인망 쌍끌이 어선 98금양호가 캄보디아 국적 선박에 부딪혀 침몰했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 9명 중 2명은 시신으로 발견됐고, 나머지 7명은 실종됐다.
어느새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98금양호 선원의 희생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하지만 98금양호 선원의 유가족들은 아직도 고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24일 만난 98금양호 선원 고(故) 김종평(당시 55세)씨의 미망인 이삼임(61)씨는 안방 벽에 걸려있는 남편의 사진을 보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힘든 뱃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는 것이 마지막 대화라고 한다. 이씨는 인천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손주를 키우며 생활하고 있다.
이씨는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본 지인이 전화를 해 소식을 알았는데, 정신이 없어 당시 일이 기억나지도 않는다”며 “매일 같이 바다에 나가 있어 육지에 오는 날만 기다렸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가를 위한 희생에 ‘의사자’ 지정은 당연한 순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고 이후 정부는 “수색 도중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수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난 것”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금양호 선원 유족들은 이때부터 생업을 내려놓고 정부와 국회를 오가면서 의사자 지정을 위해 싸웠고, 보건복지부는 2012년 3월에서야 이들을 의사자로 지정했다. 그러나 정부는 의사자 지정에 따른 국가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국민 성금으로 유족에게 각 2억5천만원씩 지급됐기 때문에 이중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유족들은 민사·행정 소송을 냈지만 법원도 “의사자 보상금을 받게 되면 천안함 유족들과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며 “정부는 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유족들을 외면했다.
이씨는 “국민 성금은 말 그대로 이웃들이 힘든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해 십시일반 도와준 것이고 보상은 숭고한 희생에 대한 정부차원의 예우 아니겠느냐”며 “사람을 잃은 것도 원통한데 국가에서 이렇게 섭섭하게 나올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가보훈처는 천안함 5주기를 맞아 26일 대전현충원에서 추모식을 열지만, 금양호 선원에 대한 추모 행사는 올해 별도로 열리지 않는다. 유족들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금양호 위령탑에서 각자 고인의 넋을 기릴 예정이다.
실종 선원 정봉조(당시 49세)씨의 매형인 이창재씨는 “이제 더 이상 언론에 이렇다 저렇다 할 말도 없다”고 했다.
/김민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