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상점·헌책방 골목…
역사적 무게 함께한 ‘동인천’
개발 소식에 마음 편치 않고
문화의 상징 아트플랫폼 거리
형형색색 네온사인 치장
그대로 놔두는게 그리 어려운가


삼년 전,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아이 키우기 좋다는 대단지 아파트 지역, 상전벽해를 방불케 하는 신도시 지역, 이른바 ‘인프라’가 좋다는 시청 주변 등 후보지는 다양했다. 수십 채를 보러 다녀도 결정은 나지 않았다. 다들 살기 좋다는 동네들인데도 오늘 결정하면 내일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게 집이 아니라 동네 때문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추천받은 동네 대부분 우리와 연고가 없는 곳이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살거나 하는, 말 그대로의 연고 말고, 그 동네를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어떤 실감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실감은 이미 그곳을 경험한 시간과 기억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는 동인천에 와서야 그런 실감을 느꼈고 다른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이사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동인천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천의 중심지였다. 유서 깊은 학교들과 백화점, 오래된 음식점과 상점이 밀집해 있었으며 대형극장과 서점, 헌책방 골목, 음악 감상실 등이 있어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물론 다시 돌아온 동인천은 전성기의 모습은 상당히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만 것도 결코 아니었다.

그동안 인천의 도시개발은 농지나 간척지에 고층의 건물을 올려 베드타운을 만들고 고속화도로나 전철 같은 통로를 이용해 서울로 진입하는 시간과 노력을 단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동인천 같은 원도심들은 그런 방식의 개발이 쉽지 않다. 수십 년을 살아온 원주민들이 있고 축적된 시간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조성된 집과 상점, 종교시설과 학교 들이 만만치 않은 역사적 무게와 함께 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개발속도와 방향에서 비켜난 덕분에 동인천은 인천의 정체성을 간직한 유일한 장소로 남아 있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는 동인천의 이런 풍경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전동과 내동의 오래되고 조용한 골목을 걷는 것, 차이나타운에서 파라다이스호텔 쪽으로 건너가 항구를 내려다보는 것, 신포동 카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무심히 오후를 보내고 있는 외국인들과 마주치는 것. 그들이 들어온 국제연안여객터미널은 항구 도시 인천의 진면목을 느끼게 하는 장소다. 130여년 전이나 오늘이나 여전히 그 바다를 통해 누군가는 돌아오고 누군가는 떠나간다. 오래된 상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좋다. 그곳을 드나들며 나는 친구들과 처음으로 오므라이스를 사 먹었던 중학생의 마음이 되었다가, 유달리 추웠던 어느 겨울 졸업식 때의 마음도 되었다가 한다. 공간의 기억과 역사 속에서 나 자신을 가늠해 보는 것, 그렇게 해서 내 안에 축적된 어떤 세계들과 만나보는 것, 그것은 아주 근원에서부터 안정감을 느끼게 하며 삶을 환기할 수 있는 틈을 선사한다.

하지만 요즘 이 거리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국제연안여객터미널이 옮겨간다는 소식이 들리고 송현동의 오래된 주택단지들과 헌책방 거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 개통을 다시 추진하자는 얘기도 들린다. 공간의 맥락과 아무 상관없는 동화마을이라는 공간이 생겨나지 않나, 지난 겨울부터는 신포동과 중구청 인근 곳곳에 대형 트리와 조악한 조명시설이 들어서면서 이 거리의 고유한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망가지고 말았다. 대체 그 조악하기 그지없는 루돌프와 낙타와 눈송이들은 이 거리의 어느 맥락에서 왔을까? 인천의 개항장을 공들여 복원할 때는 언제고, 인천문화의 상징적 공간인 아트플랫폼 입구부터 그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치장을 해놓는단 말인가. 전선이 얼기설기 엉켜 있는(과연 안전은 한지 의심스러운) 거리를 걸을 때마다 이제 나는 이 거리를 잃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거리에 무엇을 더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 거리가 자기만의 방식과 속도로 남아 있도록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하고. 이제 이곳마저 잃게 된다면 나는 인천 어디에서 나의 인천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