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명은 거의가 뜻이 좋지만 그 지명의 한자를 모르면 뜻도 모른다. ‘판교’도 예외가 아니다. ‘判校’는 조선시대 벼슬 이름이고 ‘判敎’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의 준말로 ‘석가모니 일대의 설법을 자세히 해석하는 일’인가 하면 ‘판교잡기(板橋雜記)’는 중국 명나라의 책 이름이다. 그렇다면 경기도 성남시의 판교는? 아주 순박하고 투박하고 애틋한 이름인 ‘널다리, 널빤지다리(板橋)’다. 충남 서천군에도 ‘판교면’이 있고 영월 탄전(炭田)에 분포된 석탄기(紀)의 해성층(海成層)도 ‘판교층(層)’이지만 ‘板橋’라는 지명은 뜻은 좋은데 강도가 약하다. 16명이나 죽은 작년 10월의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때도 그 부실한 ‘널빤지 다리’를 떠올렸다. 그런데 그저께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열린 경기 창조경제 혁신센터 출범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판교는 글로벌 진출의 베이스캠프”라고 했다.

창조경제라는 게 세계적으로 앞선 우리 IT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 산업 창조와 육성을 뜻한다지만 판교 ‘테크노밸리’는 또 뭘까. ‘테크노’는 technocracy(기술주의), technocrat(테크노크러시 주장자)의 앞 토막인 teckno고 ‘밸리’는 골짜기, 강 유역이란 뜻의 valley다. 그렇다면 ‘테크노타운’이라면 또 몰라도 ‘테크노밸리’는 ‘기술+계곡’으로 머리는 사람, 꼬리는 물고기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혁신센터 출범식’과 ‘판교는 글로벌 진출의 베이스캠프’라는 표현 역시 그렇다. ‘출범’이란 닻을 올리고 돛을 세워 출항하는 것이고 베이스캠프는 반대로 고산 고봉에 오르기 위한 준비기지 천막이다.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다. 창조경제만 잘 나가고 ‘불쌍한 경제’가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경제로 돌변, 1인당 GDP 2만8천달러를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면야….

‘판교’는 물론 ‘경기도’ 도명은 알고들 있을까. 경기도는 서울 옆의 도(道)라는 뜻이 아니다. 京이 서울이고 畿가 경기다. ‘서울+경기’가 경기도고 서울이 포함된 도가 경기도다. 어쨌거나 경기도 성남시의 판교가 대한민국 창조경제 1번지로 뜬다고 했다. 널빤지 다리가 콘크리트 다리나 강철다리(鐵橋)처럼 튼튼히 잘 버텨 창조경제 1번지의 빛나는 위상을 확 뽐내 주기를 기대한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