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즈넉한 건물에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났다. 하지만 이 학교가 초연한 겉보기와 달리 사격장에서 나는 소음과 진동의 고통으로 속이 곪을 대로 곪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학교를 찾은 그 날도 하늘에는 전투 헬기들이 굉음을 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바로 옆 사람이 하는 말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요란했다.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앉아 수업하는 교실 안도 바깥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마 후 사격장에서 쿵쿵거리는 벌컨포 포격 소리와 헬기의 굉음이 울리자 교실 창이 흔들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잠깐 멈칫할 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축을 뒤흔드는 포 소리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을 보자 가슴이 더욱 아팠다.
학교에서는 이러한 일이 일상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무려 60년 이상 참아온 고통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땅이 울리고 고막을 찢을 듯한 진동과 소음이 계속되고 있는 데도 학교에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는 거였다. 도시의 그 흔한 방음벽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참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 오래 근무한 고위 교직자를 만나고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기자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이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받은 인상은 교사로서 학생들의 안전과 학습권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이 외부로 알려져 혹여 자신의 인사에 지장을 받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문득 복지부동의 전형이란 생각이 들었다.
복지부동은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청 담당 공무원은 한술 더 떴다. 사격장 인근 마을의 안전대책을 묻는 기자에게 “새삼스럽게 왜 지금 그것이 문제 되냐”는 어이없는 답변을 했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식이었다. 괜히 나서다 화만 당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 학교 관계자와 똑같은 태도였다. 오히려 화를 키우고 있는 건 여기저기 숨어 있는 복지부동이었다. 외부에서 “바보처럼 왜 참고만 있어”라는 비아냥을 듣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이들의 복지부동 때문에 영평사격장 인근 마을 주민들과 우리의 꿈나무들은 그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풀뿌리 민주주의 시대 주민을 대변해야 하는 지자체조차 복지부동으로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재훈 지역사회부(포천)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