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성과 창조적 진화로
지구촌이 충만하고
속죄와 구원의 역사 통해
종교관이 행복을 선사하며
사욕·무질서 통제로
유토피아적 터전 마련되길 기원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새삼 ‘정의(正義)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급속한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유, 평등,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의에 대한 사전적 정의로는 신이 정한 율법이다, 인간의 행위나 제도에 대한 시시비비의 판단 기준이다, 혹은 다양한 요구 간의 균형을 확립하고 근거 없는 차별을 제거하는 것이다 등 매우 다양하게 존재한다.

물론 정의는 철학적인 사유의 대상이지만, 또한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마다 결정의 기준이 되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혼재하고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선택의 시점마다 정의로운 해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의란 무엇인가’는 결국 ‘인간은 무엇인가’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인간의 속성과 신과의 관계가 정의를 정의(定義)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어왔다. 이런 맥락에서 각 시대를 지배한 주체를 신, 인간 그리고 법으로 규정하고 정의를 구분한 고전적 사례가 있는 데에 대한 일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 나름 의미가 있다 하겠다.

신 중심 정의는 중세시대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우주만물의 생성과정을 신의 역사로 규정하고 인간의 탄생, 삶 그리고 미래까지도 신에 종속되는 종교적 사회의 정의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이나 존엄성이 구속된 상태에서 속죄와 구원을 근간으로 하는 신의 질서가 지배했던 시기의 정의를 말한다.

인간중심 정의는 르네상스시대의 도래와 함께 나타난 신으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상징하는 정의로서 인간중심의 정의관을 말한다. 전통적 종교적 교리에서 벗어나 상실되었던 인간의 정신과 지혜가 부활하여 자유로운 탐구와 창의력이 발휘된 시기의 정의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인간은 합리적인 사유를 통해 초자연현상이나 기적의 현시를 미신(迷信)화하고 창조를 위한 투쟁과 자연의 정복을 시도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인식될 수 있다.

중심 정의는 계몽주의의 등장과 함께 정착되어온 정의로서 왕권신수설에 반대하고 국가와 개인 간의 약속으로 형성된 정의체계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인간은 사회성이 결여된 이기적이며 생존과 쾌락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전제하였다. 따라서 자연 상태에서는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만이 펼쳐질 것이므로 모종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비이성적인 인간들의 횡포를 막고 생존과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국가라는 장치가 필요하며 이 장치 속에서 개인이 일정한 권한을 국가에 양도하고 국가는 질서와 안전을 보장하는 계약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국가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법규범의 제정과 그것의 적용을 그 근간으로 삼았던 시기부터 정착된 정의관이다.

이처럼 신과 인간과 법규범이 중심이 된 정의체계가 역사적으로 진화해 왔지만, 오늘날 이 순간까지도 인류의 삶속에는 잔인한 종교적 분쟁과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피로 점철된 혁명과 전쟁들이 그치질 않고 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고 평화와 낙원을 약속한 국가와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배가되고 있는 것은 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유하면서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파괴의 악순환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신의 시대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고, 인간의 시대에는 신이 버려졌으며, 법과 질서의 시대에는 인간도 신도 그 실체를 잃어가고 있다. 이는 신과 인간과 법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일체화되어야 한다는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먼 훗날 이들이 일체화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고 창조적 진화를 통해 역사가 진보한다는 낙관적 세계관으로 지구촌이 충만하고, 속죄와 구원의 역사를 통해 만민에게 지상의 낙원을 약속하는 종교관이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하며, 또한 사욕과 무질서를 통제하여 모든 이들의 생존과 평등을 보장하는 국가가 만백성에게 평화를 제공하는 유토피아적 터전이 이 땅에도 마련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