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화합 해치고
갈등·불신 확산시키는 요인
한·중은 물론 미국과 독일까지
일본의 역사인식 우려하는 이유
우리는 더욱 지속적인 대응과
치열하고 전략적으로 맞서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근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산케이(産經) 신문 전 서울지국장을 총리 관저에서 면담하고 위로했다. 가토 전 서울지국장은 지난해 8월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칼럼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독신인 박 대통령이 ‘국정개입 문건 의혹 사건’으로 유명해진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두 사람이 긴밀한 남녀관계인 것처럼 표현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인물이다. 그는 법무부로부터 출국정지 처분을 받았다가 최근 출국정지 해제로 귀국했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고생했다. 재판이 계속되니 앞으로도 건강을 조심하라”며 그를 위로했다. 한국 정부의 출국정지 조치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라고 비판했던 일본 정부의 수장으로서는 그를 불러서 위로하는 퍼포먼스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행동에서 한국에 매우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듯한 인상을 받은 사람은 비단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 언론에서 산케이 신문의 위상은 매우 약하다. 일본의 3대 신문에도 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산케이 신문이 우리나라에서 악명높은 이유는 매우 우파적이고, 때로는 극우적인 태도로 일본 극우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이기 때문이다. 종군위안부를 비롯한 역사문제에서 왜곡 주장을 일삼고, 독도 문제에서는 억지 주장을 늘어놓는다. 그런 산케이 신문의 가토 전 지국장은 이웃나라의 원수에 대해 흑색선전 수준의 소문을 썼다. 그가 이런 칼럼을 쓴 이면에는 역사와 독도 문제로 아베 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망신주고 싶은 산케이 신문의 의중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그런 가토 전 지국장을 아베 총리가 직접 만나서 위로하고, 일본 언론에 보도까지 했다는 것은 산케이 신문을 지지하고, 힘을 실어줬다는 의미를 갖는다. 향후 아베 총리가 산케이 신문과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더욱 저돌적인 행보를 할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1954년생인 아베 총리는 일본 역사에서 태평양 전쟁 이후에 출생한 첫 총리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이웃나라와 세계의 우려를 무시하고, 억지 주장으로 영토분쟁을 일으키려는 아베 총리의 행동은 상당한 우려를 낳는다. 아베 총리의 행동은 이전 총리들과는 전혀 다르다. 과거에도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왜곡 망언과 행동은 많았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이 비판하면 일본의 총리들은 자중하고, 비교적 이웃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역사 왜곡 막말을 하는 장관은 사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우파 정치인이면서 아베 총리의 정치적 대부 역할을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는 총리였던 2001년 8월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대표적 종교기관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중국이 거세게 비판하자, 그해 10월 한국을 방문해서 냉각사태를 풀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과거 일제 침략전쟁 시대에 태어나서 한국·중국에 대해 나름대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관계를 중시하는 정치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일본 정계는 전후(戰後)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일본 전후 세대에서는 “왜 할아버지, 부모 세대의 잘못을 우리가 책임져야 하느냐” “이만큼 사과하면 됐지, 어디까지 사과해야 하느냐”는 주장이 많이 나온다. 잘못된 역사 교육과 일본 우파들의 영향이다.

아베 총리는 전후 세대의 선두 주자지만, 그의 뒤에는 더 많은 전후 세대가 있다. 그들 중에는 ‘또 다른 아베’, 어쩌면 ‘아베보다 더한 정치인’이 나올 수 있다. 특히 국민들도 전후세대가 주류가 되면서 우경화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계의 이런 분위기는 동아시아의 화합을 저해하고, 갈등과 불신을 확대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중국은 물론 미국·독일 등까지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을 우려하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역사문제에 대해 지속적이고, 치열하게, 그리고 전략적으로 부딪쳐야 한다. 불행한 역사를 망각하면 불행한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