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의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이완구 총리는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진실 차원을 넘어 이미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은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리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국민들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정치적 판단은 내려진 상태다. 새정치연합은 오늘 의원총회에서 총리 해임 건의를 위한 당론을 모아갈 예정이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이 돌아올 때까지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는 입장이다.

4·29 재보선을 앞둔 시점이 사태해결에 대한 여야의 셈법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대통령 부재중에 총리의 해임건의안에 대해 여당이 합의해 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피의자 신분이나 다름없는 총리에게 더 이상 국정을 맡겨서 국정혼란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새정치연합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 귀국 후에 사의를 수용하는 수순도 가능하지만 문제는 이 총리가 사퇴할 뜻이 없다는데 있다. 이미 새누리당 지도부나 청와대도 이 총리의 자진사퇴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해임건의안을 둘러 싸고 여야가 정치적 셈법에 의한 밀고 당기기를 한다는 것은 이번 사태 역시 정쟁에 휘말릴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본회의에 보고되고 표결결과 부결된다면 새누리당이 져야 하는 정치적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결된다면 새정치연합은 정국을 주도할 동력을 확보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함직 하다. 사실상 식물총리의 국정수행을 대통령 귀국 때까지 방치하는 것도 정치권의 직무유기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정치적 셈법을 탓할 수는 없으나 총리거취를 둘러 싸고 정치적 유불리를 저울질할 일은 더욱 아니다.

이 총리의 사퇴가 기정사실화하는 마당에서 해임건의안의 단독 발의는 의결정족수 미달로 표결에 이르지 못할 개연성도 있다. 또한 총리사퇴 문제를 명분으로 한 강공 모드가 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 문제의 본질을 비껴감으로써 새로운 정쟁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 총리의 자진사퇴 여부를 좀 더 지켜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새정치연합이 지나치게 선거를 의식한다면 오히려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