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건립결정 협의절차 허술
2012년 6월 협약서 사인이 전부
市 “구두계약도 이행책임” 입장
공청회서 보고생략 홍보 열올려
착공후 비정규 학예사로 TF구성
“공공시설 대기업 명칭 비문화적”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문제는 처음엔 기부채납 공공시설에 대기업의 아파트 브랜드인 ‘아이파크’ 명칭 사용의 적절성 여부에서 시작됐지만, 논란이 진행되면서 수원시 최초의 시립미술관 건립이 민주적 절차와 전문적 통과의례를 소홀히 했다는 또 다른 논점으로 비화됐다.

수원시는 아이파크 명칭 강행의 이유로 ‘염태영 수원시장과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 사이의 구두약속’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시민단체들의 미술관 건립 협약서 및 건립과정이 담긴 문서를 공개하라는 요청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시립 미술관 건립이 결정되기까지 수원시와 현산 간의 공식적인 협의절차는 2012년 6월에 맺은 협약 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시의 한 고위관계자는 “시장과 현산이 만나 구두로 미술관을 건립키로 약속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해 6월에 협약서를 맺은 것 외에는 별도의 협의과정은 없었다”며 “명칭문제도 당시 시장이 현산 측과 만나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월 염 시장은 시민단체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술관 유치를 위해 정몽규 회장을 만났고 현산이 미술관을 기부하는 대신 자신들의 이름을 걸어줄 것을 요구해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며 아이파크 명칭 사용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결국 수원시는 500여억원 규모의 수원 행궁동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300여억원의 미술관을 기부채납 받는 결정을 하면서도 협상팀 하나 없이 시장의 구두약속만으로 일을 처리한 셈이다.

또한 지난해 2월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수원시는 같은 해 4월께 5명의 계약직 학예 공무원으로 구성된 미술관 TF팀을 구성했는데, 미술관 운영계획은 물론 전시관 설계조차 관여하지 못한 채 시립미술관이 착공된 것이다.

이같은 수원시의 행정절차(?)를 두고 시민단체들과 예술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경기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문화시설 건립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건립 결정 단계에서 부터 절차를 담당하는 행정과 콘텐츠를 고민하는 문화전문가들이 치열한 논의 끝에 계획을 구체화해야 한다”며 “특히 기업이 문화 관련 기부채납을 할 때는 자신들의 기부를 드러내고 싶은 속성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그들의 요구를 조정할 수 있는 협상팀을 꾸려 체계적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절충안을 만들어 그에 맞는 기능과 공간을 설계하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수원시 역시 이같은 절차를 충실히 이행한 사례가 있다. 광교신도시 개발이익 환수를 위해 경기도시공사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수원광교박물관’이다.

수원시와 경기도시공사가 2011년 5월 박물관을 확정하기 전까지 1년여의 시간 동안 수원시 도시디자인과와 수원박물관 학예팀이 사전 협상팀을 꾸려 박물관 건립절차와 운영방안에 대해 도시공사와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수원박물관과 광교박물관의 기능 및 공간을 재배치하고, 박물관 규모를 확정, 전시기획안을 제출하는 등 박물관의 정체성과 기능을 내실있게 갖춘 뒤에야 박물관을 기부채납 받기로 결정했다.

김영균 수원시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사무국장은 “수원시 행정수장인 시장이 공공시설물의 명칭을 구두로 약속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더구나 120만 수원시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수원시장으로서 시민들의 의견 수렴 없이 미술관 건립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은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시민단체들은 미술관 건립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수원시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아이파크’ 명칭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여론이 커지자 시민단체들은 공청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작 공청회에서 수원시는 명칭과 건립절차와 관련된 보고는 생략한 채 시립미술관 홍보로만 일관했다.

당시 공청회에 참석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타 미술관의 운영 및 교육사례나 시립미술관이 지어진다는 홍보만 가득해 의미없는 공청회였다”며 “공공기관에서 500여억원의 땅을 무상제공하고 300여억원 규모의 건물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식적인 문서와 자료도 없고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행정팀조차 없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기업이 지방자치단체에 기부채납을 하고도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은 사례들이 충분히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5년 수원시에 수원 제1야외음악당을 기부채납했지만 명칭이나 기업전시관을 요구하지 않았다.

LH도 판교신도시개발이익으로 성남시에 400억원 가량의 판교도서관과 판교청소년수련원을 기부채납했고, KT&G는 대구시에 160억원 규모의 부지와 공장건물을 문화예술공간으로 기부했지만 그에 따른 대가는 없었다.

배봉균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장은 “공공 문화시설의 명칭에 대기업 상품 명칭을 포함시킨다는 자체가 비문화적”이라며 “특히 현산과 같은 대기업이 지자체에 문화시설을 기부채납하고 이를 활용해 기업 홍보를 하는 것은 순수한 기부라고 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의 이같은 지적에 대해 수원시 관계자는 “수원시장과 현산 사이의 구두약속도 엄연히 이행할 책임이 있는 구두계약으로 계약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현산측의 반론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주요관계자와는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통화가 이루어진 실무진들은 “해줄 말이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공지영·유은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