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부, 절도사시절 피란온 왕 극진히 대접
50년간 권력 중심에… 외손자 셋도 왕위에
고려시대 우리나라는 요(거란), 금(여진), 원(몽골), 왜구 등과 많은 전쟁을 치르며 살았습니다.
고려는 먼저 거란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1차 침입 때에는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2차 침략 때에는 거란 왕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쳐들어옵니다. ‘강조의 정변’이라 불리는 고려 조정 내부의 사건을 구실로 거란이 고려를 침략해 온 것입니다.
침략에 맞선 고려는 강조가 나서 잘 싸웠으나 결국 패배하고 말아요. 그 후 개경이 함락되고, 당시 왕이었던 현종은 어쩔 수 없이 멀리 전라도 나주로 피란을 떠나게 되지요. 힘든 피란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충청남도 공주에 잠시 머무르게 되는데, 이 때 현종은 공주절도사였던 김은부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김은부, 그는 누구일까요?
조선 초기에 발행된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안산을 근거로 삼는 성씨(집안)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안산 김씨가 바로 김은부의 집안입니다.
원래 안산 김씨의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후손인 김긍필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긍필의 후손들이 안산에 살면서 안산을 자기 집안 고향으로 삼게 된 것이지요. 안산 김씨가 고려 초기 문벌귀족의 대열에 오른 것은 바로 김긍필의 아들 김은부때 입니다.
머나먼 나주로 피란길에 오른 현종을 바로 이 김은부가 지극 정성으로 대접해 임금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심지어 그의 큰 딸에게 왕의 옷인 어의까지 지어 바치게 하지요.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중에 그 딸이 왕비가 되니, 그녀가 바로 원성왕후입니다. 그녀는 훗날 덕종(제9대)과 정종(제10대)을 낳게 됩니다. 또한 그의 다른 두 딸 역시 현종의 왕비인 원혜왕후, 원평왕후가 되는데, 원혜왕후는 문종(제11대)을 낳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김은부의 큰 아들인 김충찬 역시 전중시어사(어사대의 정6품 벼슬), 지중추원사(중추원의 종2품 벼슬), 병부상서(오늘날의 국방부장관)를 지내는 등 높은 관직을 맡게 됩니다. 또한 둘째 아들 김난원은 출가해 스님이 됩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던 원혜왕후가 낳은 아들 문종이 왕명으로 자신의 넷째 왕자를 출가시켜 승려가 되게 하는데 그가 바로 대각국사 의천입니다. 김은부의 둘째 아들 김난원은 바로 그 왕자, 즉 의천의 스승이 됩니다. 그리하여 후에 김난원은 ‘경덕국사’라는 높은 칭호를 받게 되지요.
이렇게 하여 김은부는 왕의 장인이 되고 외손자들이 왕이 되니 가히 당대 최고의 집안이라 할 수 있겠죠? 이로써 안산 김씨는 고려 현종에서 문종까지 4대에 걸쳐 50여 년의 세월동안 권력의 중심부에 있게 됩니다.
이렇게 안산 김씨 가문을 통해 우리는 안산이라는 공간과 고려 초라는 시대가 씨줄과 날줄로 만나는 역사의 궤적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신대광 원일중학교 수석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