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장 받고 많이 생각했다
내가 정말 꿈을 이뤘다면
가슴에 노란 리본 다는 것…
세월호 아홉명은 아직도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았기에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던 열 살에 제3회 백일장에 참가해 상을 받았다. 아직도 그때의 몇몇 장면들이 선명히 떠오르는데 봄날의 바람처럼 따뜻하고 마음 어딘가가 기분 좋게 부풀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당시 새얼백일장에는 학년당 서너 명 정도만 선발되어 참가할 수 있었다. 어느 선생님이 나를 추천해 주었는지, 간단한 시험을 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백일장에 나가서 글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쁨, 어떤 으쓱함, 신나는 기대 같은 것만 기억난다. 백일장에서 좋은 글을 쓰라고 선생님이 따로 불러 모으기도 했는데 원고지 쓰는 법 정도를 알려줄 뿐 나머지 시간은 그냥 혼자 뭔가를 생각해 보는 연습이었다. 나는 오래된 나무 걸상에 앉아서 바람을 맞아 한없이 부푸는 교실 커튼 따위를 구경했다.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의자에 앉아있는 게 그냥 좋았고 뭔가 조용하고 좀 쓸쓸하지만 그런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생각들도 풍선처럼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비로소 내 안으로 들어가 내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 경험하는 것, 거기에서 일어나는 소소하고 변화무쌍한 감정들을 만지고 느껴본 경험이었던 것 같다. 글감을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내내 함께 했던 그 느낌은 어린 나를 매혹시켰다. 그러니 상을 받고 나서 아예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겠지. 물론 뛸 듯이 기뻐했던 부모님의 상기된 표정과 격려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한없이 부풀게 했겠지만.
지난 4월 18일에 열린 30회 백일장에는 나처럼 어렸을 적 백일장에 참가한 시인·소설가 들이 초청받았다. 와서 꿈을 이룬 것을 보여 달라는 초청장의 말, 그 말이 좋기도 하고 어딘가 부담스럽기도 해서 여러 번 생각했다. 내가 정말 꿈을 이루었는가 하는 의문에서 꿈을 이룬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물음까지,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가까스로 한 생각은 내가 정말 꿈을 이룬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찾아온 이 좋은 계절은 아주 슬픈 계절이기도 하니까. 아직 세월호 희생자들의 가족은 광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고 아홉 명의 사람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백일장 당일에는 유난히 볕이 좋았다. 풍선을 날리고 돗자리에서 김밥과 과자를 나눠 먹는 아이들의 환한 얼굴이 눈부셨다. 문학은 그렇게 어딘가 즐겁고 신나고 나 자신을 위안하는 따뜻함으로 찾아왔지만 백일장이 먹은 나이만큼 서른 해가 지나 이제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는, 고통스럽지만 바라봐야 하고 그것을 또다시 다른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들여다보고 기록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면 망각하지 않기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이 결국 기록자이자 작가가 아닐까. 지금 운동장에서 원고지를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긴 아이들 모두 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이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용기를 내서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줄 수 있었다. 얘들아, 그래 나는 꿈을 이루었어, 하고. 서른 해가 지나서 다시 지금의 너희들처럼 나쁘면 나쁘다고 쓰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쓰는 그런 사람이 되었어, 하고.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