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됐다. 어제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이 장중 한 때 100엔당 900원 선이 무너졌다. 900원 붕괴는 2008년 2월 이후 7년 여만이다. 내수침체로 가뜩이나 위축된 한국경제가 엔화 저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산업 전반에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세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중국 성장마저 둔화 되는등 수출 전선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엔저 때문에 더욱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뿐만이 아니다. 관광·유통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의 이탈이 가속화할 뿐 아니라 국내 관광업계에서 ‘큰 손’ 역할을 하는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도 일본으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출 상위 100대 품목 중 55개 품목이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다. 원화가치는 오르고, 엔화가치는 떨어지는 상황이 이어지면 우리 수출품의 가격경쟁력 또한 추락하게 마련이다. 전자·자동차·조선·철강·화학 등 일본 기업과 경합하는 분야에서 받는 충격은 더 크다. 엔저 하락에 기댄 일본 기업들이 수출 가격을 내리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여 나가면 우리 수출 기업들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더 걱정은 국제사회가 엔화를 무제한 방출하는 아베노믹스를 용인한다는 데 있다. 이는 900원 붕괴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글로벌 금융회사들 중 BNP 파리바는 100엔당 786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출 경쟁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절체절명의 과제인 경제회복도 큰 차질을 빚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정부는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엔저에 맞설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도 엔저에 불편한 입장인 만큼 한·중 공조에 의한 외교적 대응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엔저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해 무엇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부 역량 강화와 기술력에서 우위를 확보해 나가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원가절감 노력은 물론 이번 기회에 내부적으로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결국 기업이 활력을 되찾아야 한국 경제도 살아난다. 아울러 정부가 시장경제의 숨통을 막는 불필요한 규제를 하루빨리 철폐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